당신의 시 ‘금희시인’

금희시인의 詩 봄은 물고기 외 4편

금희시인 약력

 

영월 출신, 2015계간 예술가로 신인상 및 등단,

시집 미안하다 산세베리아있음.

2022년 인천문화재단기금(발간지원) 선정(시부문)

 

 

봄은 물고기

 

앵두꽃이 졌다

 

벚꽃보다

빠르게 헤엄쳐 갔다

 

비늘을 털고

수천수만 송이

 

알을 낳고 승천했겠다

 

 

 

외박 (外泊)

 

언니, 목련을 봤어.

버스를 타고 한참 저문 밤을 오다가

저문 밖을 내다보던 목련이

봉긋이 부풀어 오르는 속으로

들어가 버렸어, 내가.

아니 아니,

내 속으로 목련이 들어와서는

봉긋이 벙그는 거야.

 

그러니 언니,

내 맘이 어땠겠어?

내 견갑골들이 횡격막이 갈비뼈들이

다 벙글어지더니

심장이 꽃술이나 된 듯 두근거리지 뭐야.

 

, 언니.

어쩌면 좋아.

밖에는 밤이 깊고

별들이 총총히 내려다볼 텐데

저 밖으로

아니, 저 밖이 내 안으로 몽땅

쏟아질 것 같아 어쩜 좋아.

 

그러니 언니,

오늘은 목련에게서 자고 갈래

목련이 지어놓은

환하고 둥근 잠

석 삼일치만 자고 갈게.

 

 

 

미안하다, 산세베리아

- 레게 풍으로

 

지난 겨울 보일러가 꺼진 방에서

산세베리아가 동사했다.

문을 열자, 황달기에 말갛게 부은 몸이

물컹, 녹아 내린다

잿빛 곰팡이가 구석구석 박힌 노래를 닦으며

손바닥만한 창문을 연다.

 

저기 솟은 해가 뚱뚱해 뚱뚱해 뚱뚱해

바퀴벌레 쥐며느리 동장군은 비겁해 날렵해 홀쭉해

고향의 노래를 불러줘 검은땅과 비릿한 풍요에 감사해

 

열대에 풍만한 바람을 기억해 물큰한 향기를 들려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저 이글대는 열대의 혈액

일렁이는 파도의 시푸른 이빨로도 다치지않는

야이야이야이야~ 허 이야이야이야이야~

 

빛나는 야생의 나팔 번뜩인 포효하는 별빛

뜨겁게 달리는 전사의 함성이 멈추지 않게

그치지 않는 태양의 노래를 기억해 불러봐 들어봐

야이야이야이야~ 허 이야이야이야이야~

 

 

 

늙은 벽지가 일어선다.

발바닥을 타고 오는 냉기를 서둘러 빠져 나온다.

미안하다, 오늘자 신문지에 싸서 버린

내 청춘 아프리카 한 포기

 

 

 

 

편애는 나쁘다

 

시인은 편애를 일삼는 족속이다

 

슬리퍼를 슬슬 끌며 달에게까지 걸어갔다 돌아오면

이내 몸에는 달이 들었다가 나간 자리가

모래 위에 발자국 모양 찍혀 있고

안개 낀 서해의 비린내처럼 달내를 묻혀 돌아오곤 하고

들어섰던 자리에 아직도 내가 마르지 않는

달방석 하나 오래도록 떠 있곤 하지 않던가

 

또 구름이 슬슬 문지르고 다니는 밤에는

썰물이 밀려나간 밤바다에 온 것 같아

백석이 지중거리며 걸었다던

바닷가를 나도 걸어보기도 하고

낮 동안 구름이 한 점도 없던 날에는

가마솥에 초두부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듯

몇 점이고 구름들이 몰려 와

그을려서는 안 될 무엇이라도 있는 양

마음 한편을 가려주고 가곤 하지 않는가

 

편애는 옳지 못하다

사방에서 꽃들이 곤혹스런 질책으로 필 때

참으로 그렇지 않다고 애써 웃어주지만,

고쳐 보려고도 하지만

 

아직 나의 연애는 날마다 새로워

슬쩍 곁눈을 판 후에는 더욱 사랑하게 되니

 

편애하는 것들이 많아서

세상 것들과 다 연애하는 카사노바처럼

나는 어느 때나 그 경지에 이를까?

 

오늘 하루는 바람에게 활짝 방을 내어 주고

달빛과 연애하는 개울가에서 희뜩이다가 올까보다.

 

 

 

 

헛간을 태우다니

 

저 꽃들은 다 헛간을 가지고 있었구나

 

헛간에 들인 검불들 지푸라기들 짚더미들

그곳에 기어드는 고양이와 쥐새끼들과

흰개미와 틈새로 들여다보는 햇볕과

물들인 손톱을 가지런히 내어 보이던 달빛과

말들과 말들의 갈기들과

쇠스랑과 빗자루와 물뿌리개와 물마른 호스가

비오는 날 젖은 발을 디밀던

처량한 짐승들의 꿈꿈한 냄새들이

고이고 삭는 헛간

 

일을 준비하거나 마감하거나

삶을 준비하거나 마감하거나

 

헛간은 살아있는 냄새로 가득하겠지

한쪽에는 밭이랑을 고르고

씨 뿌릴 곡괭이와 씨앗 주머니가

발소리를 따라가며 이미 흥겹겠지

 

돌아다보면 누군들

헛간 하나 태우고 싶지 않았으리

삶이고 짐인 모든 농기구들이 거기 있기 마련이니

 

헛간을 들이고 태우는 일로

봄이 왔다가 봄이 그저 왔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