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심승혁시인'


심승혁시인의 詩 비,고란 외 4편

심승혁 시인의 약력

 

1970년 강릉 출생

2017년 격월간 문학광장등단

2018년 제6회 황금찬문학제 시화경진대회 우수상

2019년 제10회 백교문학상 우수상

2019년 제10회 강원경제신문 누리달 공모전 대상

2020년 강원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20201시집 수평을 찾느라 흠뻑 젖는 그런 날이 있다출판

2020년 제22회 교산허균문화제 전국백일장 은상

2021년 제11회 전국 독도문예대전 부문 입선

2021E-Book 아부지 핑계출판

2022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2022년 제576돌 한글날 기념 창작 공모전 대상 (강원도지사상)

20232시집 손금 안에 연어가 산다출판

 


비, 고란

 
  무엇을 적어도 좋은 날이었을 테지
  INFJ라든가 어머니 끝내... 라든가 5월 21일은 당신을 만난 날이라든가 비가 많아서 젖었어 같은 자백이라든가
 

  시간으로 파놓은 고랑에 빗소리 졸졸 쌓여 잔뜩 흘러도 좋을,
  없어도 상관없지만 있으면 왠지 든든한,
  지난 기록의 바랜 비고란으로 과거를 한 번 더 읽으면


  생각이 아무리 비로 씻겨도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점점 희게 지워지는 기억 위에 검게 그을린 필체처럼,
  내일쯤에 지금들을 비워내지 않도록,
  비 오는 날을 굳이 기다려 고랑 하나씩에(잊는 일은 없을 만큼만) 채우고 싶기도 하지


  훗날 혹여,
  잊음에 매몰된 아우성들을 줄-줄-이 찾아 듣길 바라면서
  무엇을 읽어도 좋은 날이 되도록 말이지

 

 

 

겨울을 건너는 중

 

  바깥들이 가파르게 깎이는 날


  쏟아지던 당신의 흰 발자국이 검은 밤을 푹푹 찌르길래 굳은 손 펄펄 흔들며 세상 가장 조용히 귀를 녹여 소리마저 언, 밤을 얻어냈는데

 
  오후로 익은 볕이 따뜻해서였을까

 
  흰 밤의 파편에 축축해진 아침, 가뒀던 소리 조각들 줄줄 눈에서 빠져나와 태양 가까이 반짝이는 오후에 도착했던 그날이 희미하도록 멀어진 동안 귀 안에 넣어둔 말들 무뎌진 바깥 가득 부스스 떨어져 소리 없는 바람 희게 쓸고 간 휑한 시간에

  눈 감은 나는 서서

 

  ‘당신을 두드리면 어떤 소리가 날까?’

 
  시리디 시린 귀를 쫑긋거렸네 또,
  혼자 검게 허공을 두드렸네

 


 

 

밤 깊은 닭목령
새끼 고라니에 놀라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퉁, 슬픈 소리
깨진 전조등에 의지해
차부터 살피고서야 걱정이 됐다
작고 가벼운 심장으로 잘 뛰어갔을까
어둠뿐인 숲에 귀를 대다가
풀 소리의 고요에 갇혔다
살아있(어야 한)다 살아있(어야 한)다
후우, 내 숨만 크게 들렸다
 

엄마가 쓰러졌다
고통뿐인 시간 진통제로 재워드리고
숨소리 새근새근 고요를 듣다가
퉁, 새끼 고라니가 떠올랐다
 

후우, 다 내 죄 같다

 

 

 

 

 

가위바위보!


살다가 선택의 순간이 오면 너와 혹은 나와

마음 다해 손을 내밀어
누구도 반박 않는 결정의 힘을 인정하는 일
 

서로를 숨기던
살피다 앞에 보를 붙이면 한결 보드라워지는 것처럼
보는 일에 정성을 쏟아
다 읽어낼 듯 열어젖힌 눈동자가
시신경을 가슴 어딘가 연결시켜 한없이 품을 넓히는 일


햇볕 가득 담긴 네모난 돌 위에 앉는 날들을

ㅁ, 이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그 모든 게 보로 시작된 따뜻한 일 같아서


뾰족하게 내민 너의 가위에 찔려도
묵묵하게 내민 너의 바위를 품고서
길게 오므린 입술 활짝
 

보 보 보!

 

 

 

손금 안에 연어가 산다

 

꿈이었을까


흰빛 튀어 오르는 강변에서
물이 멈췄다 흐르도록
나는 가끔
연어를 보았던 어릴 적이 된다


돌아갈 곳 있음의 다행과
그곳에서의 죽음이 두려워
붉어진 몸으로 뒤엉킨
나는 점점
옆구리 희미해지는 연어가 된다


선, 이미 손에 꼭 쥐고
빈, 옆구리 쓰다듬으며
긴, 시간 숨을 쉬었던가?
 

부레에서 허파로 허겁지겁
죽다가 살고 또 살고 그동안
나는 힘껏

 
사는 일이 꿈같은
손금을 거슬러 오르다가


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