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김성희시인’


김성희시인의 詩 접시를 깨트린 후 외 4편

김성희시인 약력

 

부산출생

2015년 계간 미네르바로 등단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 졸업

2020, 시집 나는 자주 위험했다미네르바 시선

 

 

접시를 깨트린 후

 

접시 하나를 깨뜨렸는데

조각조각 별빛이 요란하다

떽떼굴 구르던 사과는 노을에 부서지고

흰 구름이 금박무늬 테두리를 지웠다

접시는 우주의 자각몽이었을까

 

아뿔싸!

눈을 감고 현기증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생리혈 같은 사과의 사금파리

내 안에 붉은 것들은 태양의 리듬이었을까

 

인생이란 적당히 달고 적당히 기름져서

질리면서도 허기지는 삶의 자전自轉

누군가 수없이 접시를 깨뜨려도

풀밭 위에 식사는 깨지지 않는 욕망

다만 식욕에 금이 갈 뿐이다

 

새 울움같이 흩어지던 접시의 파편에서

샛별이 우주의 소실점으로 뜨고

식욕을 잃은 오후, 잃어버려도 좋을 식욕은

허공의 달빛 위에, 달달한 관념이 되었다

 

 

 

모감주나무

 

-축축한 잠에서 깨어나면 아름다운 너는 없다

 

늦은 저녁을 짓느라고

된장을 풀고 매운 고추를 썰고

도마를 탕탕 두들겨 마늘을 찧으면

눈물을 믿지 않는 나이에 얼마쯤 울 수 있는 알싸한 재료들이다

 

예스런 생각과 방금 돋아난 생각을 버무린 저녁

소화되지 않을 결핍에 처방전 없는 구름무늬 알약을 삼킨다

 

이제 달을 보는 일이나 별을 헤아리는 일보다

삼가 알약을 삼키는 일이 경건해진 지 더 오래

열 길 물속보다 한 길 사람 속에서 곡진한 캡슐이 내가 믿는 신이다

 

풍어제가 시작된 어느 바닷가

그때 풍파를 달래주는 주술같이

거친 바다 위에 오방색 같은 모감주꽃

 

간헐적 두통에도 가팔라지는 불안

꽃잎을 빚은 듯 세세한 빛깔의 알약들에

파도치는 나를 주술처럼 달랜다

 

 

 

비치코머

 

라일락이 피는 시점에 귀 기울이세요

바람이 발끝을 모아 바다를 서술하면

싱싱한 삶의 냄새를 맡기 위해

이웃도 모르게 해변으로 갑니다

그때 새가 되고 싶은 꿈을 꾸지 않아요

 

물빛이 깨뜨린 구름은 더더욱 줍지 않죠

그건 바다의 일이잖아요

 

가능한 한 멀리 바라보기

점심은 건너뛰고 뺨은 조금 야윈 채

저녁 별빛에 수줍어하기

그러나 파도 소리에 부서지지 않기

 

농담이 입술에서 녹을 때까지

파랑의 터널을 통과하는 유쾌한 플라스틱을 기다려요

 

완전한 것을 동경했던 불완전한 시절에

늘 먼바다를 읽었어요 그 짙푸른 언어를요

 

눈물이 흘러가는 바다

거기에 하늘이 비친다면 눈동자가 넓어지고

가장 먼저 슬픔을 발견하는 사람이겠죠

 

이상하죠, 해변으로 밀려온 쓰레기를 줍는데

왜 바다보다 우리 영혼이 맑아질까요

 

 

 

생태 백신

 

당신은 코로 숨 쉽니까

, 아니오가 아닌 마스크로 대답하세요

바이러스는 가까이 공포는 더 가까이에서

당신의 마스크는 생물입니까

 

달빛으로 가는 날숨이

별빛에서 오는 들숨이

마스크에서 읽히는 문자입니까

 

마스크 없이는 버스도 마트도 이용 불가입니다

마스크 없이는 햇살도 바람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선 호모 사피엔스

만물의 영장에서 그냥 만물일 뿐입니다

 

비강과 구강이 통제를 받고

연구개와 경구개는 폐쇄되고

계면쩍은 웃음은 일상에서 계면활성제가 되지 않습니다

 

약간의 흰 구름과

아쉬운 저녁노을

생태계 백신인 연둣빛에서

, 아니오가 아닌 자초지종을 말하세요

코로나19 배후에는 환경파괴가 있고

전리품은 플라스틱이라고요

 

 

 

슈가 파우더

 

혀를 깨물고 죽으려다

혀가 맛이 없어 도넛을 깨물었다네요

기름진 혀끝으로 달콤하게 죽을 수 있다는 농담

그 농담에 슈가 파우더를 뿌리면 새하얀 거짓말이 된다네

 

도넛을 깨물었는데

마음 한가운데가 뻥 뚫려서

둥글둥글 살 수도 있다네요

수요일엔 빨간 장미보다 도넛

한 상자를 사면 한 상자를 더 주는 행운이 있다네요

 

슈가 파우더같이 한 마디 흩뿌리자면

달콤함이 투머치하면 비현실이 될까 봐

아메리카노를 곁들입니다

달콤 쌉쓰레한 인생의 맛은 즐기고

기름진 타인의 맛은 절제하면

버블버블 더블더블 원더플한 삶이 사계절 내내 유리 진열대에 전시된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