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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 '강치두 시인'남자의 가방 외 9편
복지TV청주방송 | 승인 2019.11.19 09:43

[시인] 강치두

[약력] 1960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으며 2011년 「시와산문」으로 등단했다.
시집 「남자의 가방」 있고 한국녹색시인협회, (사)시와산문문학회, 
시원문학회 회원, <시의 밭>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1.남자의 가방
                                                          강치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방이다 문밖을 
나와서는 가장 넓은 방이며 강물의 걸음으로 길 
떠나온 순례자이다 옆구리를 벗어나 
본 적 없는 길은 캄캄한 비탈이거나 막다른 
골목길이다 체증에 걸린 전동차에서부터 
일터를 지나 국화꽃 누워 잠든 방까지
투덜대지 않고 절뚝거리며 따라왔다
어느 날 세워놓은 책상에서 굴러 떨어져
올려놓았으나 다시 굴러 내장까지 튀어 나왔다
왼 쪽으로 굽어버린 허리를 숨기는 버릇으로
늘 오른 쪽 어깨에 매달리고 내리기를 원했다
망설이다 악수 하고 속이 텅 빈 날은
달빛에 젖은 시집 한 권으로 채웠다
풀려버린 퇴근 길 지하철 문이 몸을 물던 날
끝까지 덜미를 부여잡고 나를 놓지 않았다
이제는 서 있지 못한, 책꽂이에 기대어놓자
붙잡아도 자꾸 달아나는 춤추었던 들판을 달린다 
함께 걸어온 동안 살집에 흉터가 늘었다
뱃속에 궂은 날 밀어 넣은 만큼
술잔 속에서 젖어버린 꿈 떠오르는 날
전열(戰列)에서 이탈한 새벽별처럼
기울어진 책상에서 뒤척이는 잠자리 내려보다가
꾹꾹 우겨 넣은 짓눌려진 한 쪽 어깨 바라본다
나 하나 지키기 버거운 방들이 북적인다
술 취해 비틀거리는 나를 잃어버릴까 봐
가방 속에 미리 구겨 넣었다가 
날 밝으면 검게 돋은 어제를 면도하고 나선다  

 

 

2.내비게이션의 질주
                                                                                                                                                                                                                                  강치두


    약도(略圖) 켜놓고 달리는 길, 그녀 말소리에 홀려 앞만 보고 달렸다 목적지에 이르러 돌아보니 내가 찾는 이는 길의 끝에 있지 않았고 달려온 그 길 위에 있었다 발자국 소리 따라오는 길을 가라 부르튼 발목에게 술 한 잔 받아 주고 풀잎에 매달린 이슬과 날아가는 기러기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미처 따라오지 못한 나를 기다렸다 

 

 


3.질경이
                                                                                                                                                                                                                               강치두

 
   누가 나를 앉은뱅이라 부르면 그냥 웃는다 여름의 태양이 이마 위로 지나가면 당당하게 손 흔드는 앉은뱅이다 신작로에 질긴 뿌리 밀어 넣을 때부터 앉은뱅이로 살기를 다짐했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앉은뱅이로 바닥에 안주하며 살아간다 하겠지만 두 눈 꼭 감은 바람의 등에 태워 차전자(車前子)를 산허리까지 보낸다 짓밟혀 본 앉은뱅이는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수레바퀴나 타이어 바퀴가 굴러와도 가부좌를 틀고 물러서지 않는다 밟힐수록 새파랗게 털고 다시 일어선다 길이 있는 한 어디든 가고 함께 넓혀간다 누가 앉은뱅이를 비웃는가 수행은 높은 곳, 넓은 대지에서 하는 거라 말하지 말라 비가 오는 날은 푸른 하늘을 들여놓지 말고 비를 맞아라 짓밟고 가는 구둣발에 꽃씨를 묻혀 보내는, 길 잃은 등산화 밑바닥에서 무너진 달을 밀어 올리는   

 

 

4.떠나보내야 하는 이유
                                                   강치두

상사화 잎이 언 땅을 뚫고 나올 때부터
떠나보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찔레꽃이 다 지도록 무릎을 칠만한 답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관절이 닳아버린 손으로 편지를 쓰고
뭉클한 한 줄 추신으로 함께 넣어 보내 놓고
뒤척이던 밤이면 대문 밖에서
쿵쿵 문 두들기는 소리

아무리 걸어도 낯선 길  
누가 날 부르는 것 같아 자꾸 뒤를 돌아보지만
얼마 가지 않아 내가 날 부르는 소리임을 알았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을 나서게 하는,
물소리 저 홀로 깊어 떠나버린 봄
그 야윈 어깨가 희고 푸르러 나는 흐느꼈습니다

떠날 때는 아무 말 않는 게 더 좋은지 생각했습니다
물소리에게도 뒷모습을 새겨놓고 간사람

강 언덕 복숭아 꽃 같이 왔다가 
홀로 매달려 떠는 가랑잎 같은 이별도 있다지만
기다리고 싶습니다 나는 고향집 
모퉁이에 서있는 감나무가 날 기다리듯이

단숨에 강을 건너뛰어도 부르는 소리는 따라오고 
술잔을 내려놓듯 또 뒤를 돌아봅니다    
  
등 뒤에 빈 뜰을 들여놓고 능선 넘어 머무는 하늘이여,
산맥을 질주해 가는 바람의 등을 타고
그 능선을 넘어가 무너진 어제를 일으켜 세웁니다

 


5. 건너다니는 비
                                                     강치두

무릎 맞대고 다랑다랑 주고받듯 비가 내린다
벚꽃 구름 위에 걸터앉아 가볍게 두들기는 하늘
옥잠화 촉을 툭툭 건드리며 말랑말랑 하게 내린다
매마른 기둥을 칭칭 감는 빗발들에 섞여
가지의 끝에서 찰랑거리는 소리를 낸다
발뒤꿈치를 든 빗줄기가 꽃구름 위를 건너다닌다
한 빗발은 이우는 목련 꽃잎을 꿰매며 
공중으로 팽팽히 잡아 당겨 보지만
제 몸무게를 아슬아슬하게 버티다가
꽃잎을 철렁 떨어뜨리고 몸서리를 친다
벚나무 위에 앉아 목을 축이던 직박구리가
빗줄기 끝을 물고 날아오른다
푸드덕, 소리를 떨어뜨린 가지
공중에 물결을 일으키다가 이내 잠겨버린다
매화나무에도 명자나무 처마 밑에도 수런거림이 쌓여간다
섬 같은 공원 숲은 그것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일어선다
빗물 따라 흘러 온 벚 꽃잎 몇 장이
손바닥만 한 호수에 떠서 중얼거리고 있다
봄을 펄펄 끓여 놓고 간사람, 이 비에 나처럼 목이 잠기나

 

 


6. 어머니의 택배
                                              강치두

저문 햇살 묻은 박스가 막 도착했다
굴러다니는 끈으로 서툴게 이리저리 동여맨
겹겹 매듭에 숨 거칠게 몰아쉬는 소리
뒤틀린 채 묶여 있다
밭둑 절뚝이며 걸어 나와 길 달려온
마르지 않은 솔바람,
슬쩍 내려 보다 붙잡힌 흰 구름,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어
웅덩이에 고여 있는 하늘처럼 담겼다가
위로 한꺼번에 솟아올랐다
꺾여버린 허리로 지붕 받히고 있는 어머니,
택배 끈 한 겹씩 푸는 동안
늘 쫓겨 다니는 허기진 도시의 껍질
하나씩 벗겨져 나간 끝자리
젖은 흙 털지 못한 생강(生薑)이 불쭉
걸어 나와 거실 곳곳을 휘젓고 다닌다
빌딩 숲 돌아 나온 마른 종아리
휘감는 찬바람 차곡차곡 구겨 넣고
펄펄 끓여 마시라는 당부 그 뒤를 따른다
저녁상에 생선이 오르지 않았는데
목에 가시가 걸려 꺽꺽거리다가

늦은 밤 생강차를 마신다
속이 얼얼하고 온 몸 뜨거워진 문밖으로
가물거린 초승달이 글썽이고 있었다
                             

 

 

7. 양은(洋銀) 주전자
                                         강치두


헛간에 버려진 주전자를 닦는다
아버지 몸을 닦는다 구멍 난 
아버지 위(胃) 손가락으로 막고
아버지의 생(生)을 닦기 시작한다
구겨진 몸, 드러누운 손잡이가 꿈틀거린다
주저앉은 술잔들에게 남김없이 따라준
아버지 마지막 동행자, 항상 빈 몸이었다
처음으로 아버지를 닦는다 아버지 온 
생(生)의 그림자, 아버지의 주전자가
처음으로 아들의 손을 받아들인다.
아버지 영광은 끝내 오지 않았다
나눠주기 위해서 속을 채우고
빈속은 늘 세상시름으로 채우며
별똥별로 졌다 지금은 아무 것도 
담을 수 없는 저, 양은(洋銀) 주전자
낙엽 위에 굵은 비 내리는 밤마다
평생 사그막골 뻐꾹새 주인인 아버지 
진도아리랑 소리가 구성지게 들린다
평생 한 번도 받아보시지 못한
아들의 술 한잔 받으러 오신 걸까

 

 

 

8. 두 눈 꼭 감은 눈발
                                             강치두


산문(山門)에 자동차 세워두고 전화기 
구겨 넣었다 넓은 길 저만치 밀어 놓고
오르는 옛길, 바닥에서 올려다보는
산마루 아득하다 능선 넘어온 눈발이 
골짜기 흔들며 자꾸 앞을 가로막는 날
발 내딛자 나무는 뒤로 한 걸음씩 물러서며 
길 내 준다 오르기 위해 내려가기도 하며
제자리 돌듯 나아가는 길, 정금나무 까만
열매에 흰 콩이 한 알씩 얹혀 지고
등 굽은 소나무 머리까지 휘어져 내린다
새들마저 몸을 숨긴 적막한 숲
천년 발자국 지워지고 뒤따르는 발자국도
지워지고, 물러서지 않고 몰아 쉰 거친 숨 끝,
산정(山頂)을 용마루 경계선 위에 올려놓고
수행 중인 대웅전(大雄殿) 앞에 발을 멈춘다
고개 남으로 돌리자 갑자기 두물머리가  
앞마당으로 건너와 숨이 턱 멎었다
두 눈 꼭 감은 눈발은 북한강(北漢江)으로, 
멀리 남한강(南漢江)으로 거침없이 뛰어 내리고 
소리 없이 흔적 없게 품어버린 두 강은 
같은 곳 바라보며 느리고 바쁜 길 간다
5백 살 먹은 은행나무, 속 썩히며 가지 뻗어
양수리(兩水里)를 바라보라 가르킨다

 


9. 철도박물관
-1호선 전동차
                                                      강치두

구석진 곳에서 전동차가 숨을 헐떡이고 있다
바퀴는 기적소리를 뒤쫓으며 제자리를 헛돈다
한때 힘주었을 어깨와 구멍 뚫린 근육
달려온 길 세어보다가 붙들린 발목 내려 본다
출렁이는 심장을 실어 나르던 전동차가 옆으로 누웠다
낮게 엎드려 등 내어준 끊어진 철로, 
떠받치고 있는 침목이 팽팽하게 지키고 있다
몸 붙잡아 주었던 객실 손잡이는 그의 유품이다
밤을 쫒던 두 전조등은 먼지가 쌓여간다
멈추면 끝이어서 지친 등짝을 후려쳐
끌고 다닌 철길, 깊은 잠에 빠져있다
단 한 번 탈선하지 않고 터널과 승강장을
잡아당기며 쉼 없이 달려온, 돌아가는 길 잃어버렸다
오랫동안 굴러온 바퀴가 정거장 플라스틱 의자를
떠올리며 종착역을 떠받치고 있다 언제나
내 것인 적 없는 길 위의 발자국들이 녹슬어간다
계단을 내려와 북적이던 목마른 무리들은
안개 낀 개찰구로 모두 빠져나가고 없다
상행선을 달려가는 덜컹거리는 소리 듣고
붐비던 승강장을 생각하며 다시 시동을 걸어보다가
움직이는 내장이 아무것도 없는 무덤임을 깨닫는다
무너져가는 길 위 바람 한 자락 일지 않고
앞을 가로막았던 수많은 문을 차례로 뚫고 내려온
노을이 빈 집을 닮은 차창에 부서져 내린다

 

 

10. 감나무
-보신각(普信閣)
                                                강치두

느티나무 무거운 그늘 혼자 짊어지고 있다
바쁜 걸음 아침 옮기다가 불쑥 안긴
감나무, 허리 꺾인 채 한 쪽으로 쓸린
휘어진 가지마다 등불 동동 매달아 놓았다
구석진 곳, 손 한 번 내밀지 않고
하늘 길 잃어버린 난장이가 되어버린 몸
이름 불러주지 않아 늘 고개 숙이고 있는가
눈물은 눈물대로 혼자 훔쳐내고
기쁨은 기쁨만큼 그늘에 펼치어 두는 일
칭얼대는 어린 가지와 이파리 다독이며
물결처럼 흔들리는 무게 지탱 할 뿐, 그에게는
위로 뻗은 튼튼한 가지하나 없다
발목에 빛 감기는 오래된 꿈 이제 접었다
지금은 출렁이는 잎 떨구며
독한 추위 들여 놀 빈 방 꾸미는 저녁
뻗고 다시 뻗어도 닿지 못하는 빛
물들어 가는 떫은맛 바람에 휑구어내느라 
뿌리는 발가락에 온 힘 다 주고 있는지 모른다
제 잎사귀만한 햇살로 견뎌내는 깡마른 몸
손가락 길게 뻗은 종소리 둥글게 감긴다
햇볕 묻은 이파리 어느새 붉게 내리고
뒷마당 글썽이도록 환하게 불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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