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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 '한선향 시인'完經 외 9편
복지TV청주방송 | 승인 2019.07.05 11:20
▲ 한선향시인

〔시인〕 한선향 시인

〔약력〕

* 2005년 심상신인상으로 등단

* 시낭송가, 시낭송 지도자

* 서울 시섬문학상 수상

* 시집 <비만한 도시> 외 다수

 

 

1. 完經

                                                   한선향

달마다 내 몸 河口에선

붉은 꽃이 피었다

물큰한 갯내음 어머니의 몸 냄새

내 몸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안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비릿한 풍광은

꽃으로 오기 전 봄 한나절을

누렇게 바래주고 있었다

내 갈비뼈 사이에서 돌연 서늘해지고, 달아오르고.

까닭 없이 웃음 터지는 그 모든 것들

 

어머니의 또 그 어머니의 꽃 내림이

내 살집 속에서 시큼해질 무렵부터

꽃향기도 없이 만발한 화원엔

검불처럼 떨어지는 꽃자루 두엄처럼 쌓여

수십 개의 바늘꽃 피워낸다

 

이제 비릿한 갯내음도 지워진 河口엔

적멸보궁의 고요 선정에 든 와불

절 한 채 지어졌다

 

2. 젖은 하루

                                                   한선향

종일 해를 만난 적 없는

추적추적 궁기가 마를 날 없는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처럼

오늘은 그랬다 지루한 하루

 

날마다 펜 끝으로 다듬어내던 문자도

부화되지 않은 알들이 어슬렁거리듯

자음과 모음의 경계가 모호하게 뒤틀어진

 

유리벽을 기어오르는 올챙이의 행렬들

퇴적물처럼 쌓이는 지난날의 기억을

악필문자로 빼곡히 채우고 있는

후즐그레한 하루다

 

40도로 달아오른 아스팔트처럼

후끈한 여자가 되고픈 강렬한 것에 집착도

오늘은 왠지 젖은 하루를 경건히 위로하고픈

고요가 깊은 여자이고 싶어지는

 

 

3. 휠체어 소녀

                                                   한선향

문을 열면

별들의 언어 하얗게 부서지는 앞마당 달빛

문을 열면

대나무 발 사이 백양나무 잎사귀의 흔들림

문을 열면

부뚜막 옆 등 굽은 항아리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

문을 열면

어린 날의 추억 붉은 샐비어로 피어 있는 장독대

문을 열면

적막에 구운 고요 가슴으로 파고드는

 

그 문을 열면

슬픈 눈동자 창문에서만 머무는

소녀의 하얀 얼굴이 보인다

 

4. 가을 끝점에 서서

                                                   한선향

 

가로수 사이사이 정적을 끌어 모은다

늙은 오후의 표정이 세월의 여백을 메우지 못한

아쉬움으로 앙상하다

나의 맥박은 여전히 힘차게 뛰고 있는데

구겨진 신발의 뒤축은 힘없이 늘어져 있고

지워지지 않은 삶의 얼룩은 너무나 무거운 주홍글씨다

 

또 한 해의 끝점이 보인다

갈색 낙엽이 깔리는 보도블럭 위

울컥 도지는 이 도발적인 울분

소리소리 지르고 싶은 절규가

내안의 나를 향해 화살을 쏜다

 

이제 가을의 벼랑 끝에 서서

곡비같이 울어주는 가을벌레들의

가슴을 다독인다

어떻게든 따뜻한 겨울나기 준비를 해야겠다

 

5. 하나

                                                   한선향

쌀 한 홉 밥 지었더니

밥 두 그릇이 되었다

 

옥수수 한 되 펑 했더니

한 자루 되었다

 

무씨 천 원어치 사다

밭에 뿌렸더니

무 한 가마니 되었다

 

한 톨의 볍씨

한 알의 밀알

하나의 어휘를 찾기 위해

밤샘을 한다

하루 이틀 사흘......

 

하나의 어휘가 온 우주를 읽는다

우주 어느 곳에 눈 하나

박혀 있을지

 

6. 나의 정원

                                                   한선향

나의 정원은 고요하다

바람도 나무그늘도 고요하다

고요가 고혹적이란 걸 새삼 알겠다

서로 눈짓하는 나뭇잎새와 꽃잎들의 밀어는

가끔씩 나의 아둔한 손끝에서

문자의 자음과 모음으로 아름다운 집을 짓기도 한다

서로의 뿌리를 얽어 체온을 나누는 연리지의 사랑처럼

나의 문장의 뿌리도 내 정원 안에서 커 가고 있다

 

바람을 타는 내 마음의 흔들림이

새들의 맑은 울림으로 노래할 때

불멸의 문장을 향해 가는 나는

내 정원의 지휘자가 되는거다

 

7. 내 살아가는 길

                                                   한선향

늦가을 단풍이 더욱 선명해

한잎 두잎 떨어지는 잎들도

고와보입니다

 

꽃보다 더 붉게 타는 가을여인이라고

나이테 하나씩 긋고 가는 세월의 벽면에도

오기의 덫에 걸린

꽃 한 송이 또 피우고 있습니다

 

내 마음 저편에서 이편으로

끈질기게 잡아당기는 것은

헤프게 날려버린 그 많은 시간을

나에게 되돌려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게 당도한 이 늦가을의 쓸쓸한 배경에도

천진한 아이처럼

배시시 미소 짓게 하는 들꽃 길을

노래하며 걷겠습니다

 

8. 내 몸통에 봄을 이식하고 있다

                                                   한선향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한 마디의 봄

천천히 아껴 걷는 길에서

어쩔 수 없이 속독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오늘의 봄이 구겨진다

내가 딛고 온 길들을 말줄임표로 밀어 놓고

소망 한 줄 늘어뜨린 시계추가 똑딱똑딱

황혼의 꽃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낡은 바람의 문체로 완성한 꽃은

내 안에서 수시로 변하는 카멜레온

환상의 봄을 지금 나의 몸통에 이식하고 있다

 

9. 세월은 흘러가는 것만이 아니다

                                                   한선향

나를 스치며 지나가는 날들과

나를 맞이하며 미소 짓는 날들이

나를 묶어둘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흘러가고 있다

잊어야할 것과 잊지 않아야 할 것들이

대나무 마디처럼 선을 긋고 있는 하루하루도

시간의 지면마다 삶의 이유가 있고

벌집처럼 박혀 있기도 한

 

세월은 그냥 흘러가는 것만이 아니다

우주만물의 내공이 직조되어 있는

둥근 몸통이기도 한

끝을 알 수 없는 영원의 섭리이기도 한

날마다 뜯어내던 달력 한 장도 결국

뒤돌아서 켜켜이 세워두는 시작의 작업인 것을

 

세월은 흘러가는 것만이 아니다

 

10. 홉스골의 황덕불

                                                   한선향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홉스골의 호숫가

두덕두덕 껴입은 수사자들 펭귄처럼 뒤뚱뒤뚱

달빛이 걷는 은박지 위 허연 바람꽃

내 몸에 탱자나무 가시 돋는다

 

불하마의 거대한 몸짓 우러러

묵시록이 둥글게 둥글게 원을 그으며

두 손 가득 싸안은 소원들

잿빛 불티로 하늘까지 오른다

 

유목민의 한 처녀 이방인을 위해 기도하고

老시인 그들 머리 위 축복을 얹는다

귓볼이 빨간 시인들

황덕불 가슴에 퍼 담고 싱싱한 시어들

휘어지게 퍼내고 있다

 

* 홉스골-몽골의 한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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