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심승혁 시인'


심승혁 시인의 詩 이런 하루 외 4편

심승혁 시인

 

■약력

2017. 1 격월간 문학광장 부문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2018년 서울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 시 공모전 선정

2019. 10회 백교문학상 우수상 수상

2019.강원경제신문 제10회 누리달공모전 대상

2020. 3. 강원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선정

■활동

(봉놋방 시선집) 씨앗,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공저

시와글벗문학회 동인지 제7고요한 숲의 초대공저

9어느 날엔가 바람에 닿아공저

1시집 수평을 찾느라 흠뻑 젖는 그런 날이 있다출판

현재 봉놋방 동인, 시에문학회 회원

 

 

이런 하루

 

 

  입을 벌려 먹이를 주는 새라든가, 아침처럼 빛나는 이슬꽃이라든가, 비의 끝에 발이 묶인 무지개라든가, 햇살 물든 땅에 매달린 나무 그늘이라든가, 봉긋하게 흙의 웃음으로 솟은 아비라든가, 고슬고슬 김 오르는 저녁 밥상의 어미라든가, 일 끝낸 거친 땀을 닦는 손이라든가, 지친 어깨 위 훈훈한 미소가 흐르는 사람이라든가, 내 앞 환상 같은 너라든가,

 

  존재만으로 의미를 지닌 것들

 

  아직은 발견 못한 미지의 것들

 

  그 사이의 하루가 째깍째깍 리드미컬하게 시간을 재단하고

  새로 얻은 기억들이 배시시 쌓이고

  그 저녁의 잠깐 황금빛 노을이 따뜻하게 다녀가고

  '음 음' 콧노래가 밤을 검게 흔들어 하얀 아침을 데려오는

 

  이런 하루, 어떨까

 

 

 

 

,

 

수평을 잃은 구름의 노래를 듣는다

기울어진 한쪽 귀가 열리고

반대쪽 귀가 닫히는 순간이 생긴다

때때로 빠져나가지 못한 아픈 노래가

가슴 안을 잠잠히 맴돌아 울기도 한다

 

우산을 든 어깨가 조금씩 처지고

가벼워진 반대편으로 비가 떨어진다

따가운 비의 말들이 움푹 웅덩이를 만들고

고인 무게만큼 다시 수평이 찰랑댄다

 

가끔 기울어지는 일이 생기고

수평을 잃은 중심으로 살 때가 있다

사람의 말이 아프게 할퀴고 지나간 후

새 살이 돋아나는 시간을 살 때가 있다

딱지가 생기는 동안의 가려움을 긁으러

비가 오면 시소를 타야 할 때가 있다

 

수평은 한쪽을 긁거나 채워 중심을 세우는 것

 

우산 밑을 뒹구는 아픈 말들이

오르락내리락 구름의 노래를 부른다

다가왔다가 저만치 멀어지는

수평을 찾느라 흠뻑 젖는 그런 날이 있다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바삐 흘러가던 계절의 끝으로

서릿발 같은 겨울이 찾아와

이제는 조금 쉬라고

하얀 입김을 걸어 놓았습니다

 

화려했던 사는 일이

조금씩 퇴색되는 중에

이제는 조금 쉴까 하여

하얀 시선으로 공간을 가릅니다

 

촘촘히 엮은 거미줄에

지나던 계절이 매달리고

높푸른 하늘에 띄우던

숨의 회한이 하얗게 흔들리면

분주했던 걸음의 속도를 늦춰

잠시 허공의 안식을 문질러 봅니다

 

서리서리 차가운 복숭아나무 사이로

거미 한 마리, 어제 걸었던 흔적을 따라

따스한 삶 한 올씩 뽑아 다시 길을 내고 있습니다

 

 

 

 

두 번은 읽어주세요

 

, 꽃처럼 피겠습니다

 

하늘을 오르지 못하여 나무를 딛는 시간

걷고 걸어 숨이 차 오르면

미처 거두지 못한 마음을 메고

저 밑 남겨둔 동그란 뿌리를 향해

송이송이 다시 사는 꽃처럼 피겠습니다

 

한 번으로 안된다면 두 번

두 번이 부족하면 윤회의 윤회를 얻어

결국은 읽히고 눈에 닿을 시간을 살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나를 피우고 지게 하는 이여

 

스치듯 비껴간 시선을 다시 거두어

한 번 안에 숨겨둔 꽃의 입을 열고서

나의 고백을 읽어주세요

 

, 꽃처럼 피었으되

첫 향기에 속지 말고 묵묵히 피운 까닭을

한 번만 더 읽어주세요

 

 

 

 

내 무릎 좀 고쳐다오

 

나의 어린 시절을 업었던 무릎이 휘었다

 

숨의 무거움 따위 아무렇지도 않았기에

사는 것을 향해 부지런히 꿇었을 그,

 

이마의 주름이 물결무늬로 흘려내려도

하얀 웃음으로 속여왔던 그,

 

무릎이 휘었다

 

가슴에 묻고 지낸 시간을

더 이상은 이겨낼 수 없는 그 한마디가

겨우 무릎뿐일까 싶은 말이 뒤뚱댄다

 

낮은 울음의 허기진 눈물 한 방울

오열의 열꽃으로 팽팽히 그 무릎에 피워낸다면

훌쩍 커지는 당신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를 말이 뛴다

 

칠십이라는 무게에 눌려 색 바랜 머리를 이고

하얀 침대 위에 얌전히 다리를 모으고 앉아

무엇이 그리도 미안한지

대체 뭐가 그리 죄라고

작고 동그란 눈물이 범람해 나를 무너뜨린 그 말,

 

내 무릎 좀 고쳐다오

 

*2019년 제10회 백교문학상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