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이경애 시인'


이경애 시인의 시 탱자 꽃잎은 날리고 외 4편

이경애 시인 약력

 

전남 곡성 출생

춘천 사는 여자

시집 견고한 새벽

 

 

탱자 꽃잎은 날리고

 

꽃 진 자리마다 무덤을 만든다고

슬픔이 아주 묻히기야 하겠습니까

마는, 잊은 척 살아보지요

육신의 온기 아무리 눈물겨운들

다리 저는 두레소반 더운 김 올리는

한 끼

밥만 하겠습니까

 

영 못 본다고 죽기야 하겠습니까

씀벅씀벅 눈꺼풀 떨리도록 진정한

이별의 시로

연명은 할 테지요

 

바람도 없는 오후 세 시, 탱자 꽃잎은 날리고

 

뒤로 가는 사람의 몸짓이 저

하염없이 날리는 새하얀 꽃잎도 같았다가

서슬 푸르게 지탱하는 가시도 같다는 걸

당신은

알고 가시라는 말씀입니다

 

 

 

북항은 비

 

나의 애인은

이름도 아득한 북항에 있으리.

 

소금발처럼 내리는 비를 맞으며

오늘 하룻밤은 어느 횟집 처마 밑

아늑한 수족(水族)의 비늘과

찢긴 해초를 덮고 누워

우리 둘 사이의 먼 밤을 뒤채다

새벽, 는개와도 같은 밀항을 꿈꾸리

 

그는 지쳤을까

 

세상 어디에나 사랑은 있어,

낯선 얼굴 동그란 눈으로 다가와

위로가 되어 주면

나에게로 오는 길이 다 젖는 동안

거기에도 사랑은 있어

빗물처럼 누군가의 애인으로 고이다

파도 위에 잠이 들까

 

그렇게 항구의 노래가 되어 갈까

 

 

 

 

8

 

잉잉거리며 벌 치는 사내나 따라나설까

싸리꽃처럼 새초롬하니,

은꿩의다리마냥 가냥가냥,

따라나 갈까

사내는 벌통을 놓고

꽃이 되려나 새가 되려나 모르는

나는 향기를 나르고 노래를 나르고

벌도 없는 한낮

너럭바위에 드러누워 딱총딱총

빠알간 콩알로 총쌈이나 할까

세상이 온통 나를 기일지라도, 밤마다

그 사내 버얼건 등짝에 북극성을 띄우고

길을 잃지 않으면

길을 잃지 않으면, 나 온전히

돌아와 첫눈 오는 소리 들으리

 

 

 

 

능소화

 

나비는 꽃을 가려 앉지 않고

바람은 한 가지에 매이지 않습니다

 

세상 어느 것 하나도 내 것

아닌 것이 없으나 달리 보면

세상 무엇 하나도 내 것이 될 수 없어

간절이 구차한 밤

미처 닦아내지 못한 더위를 물리려

앞창 뒤창 다 열어 바람길을 트는데

늦도록 남은 꽃, 시울이 붉습니다

철 이른 풀벌레 울음 기어오르는 마루에 누워

바람과 달과 꽃을 낙낙히 보노라니

바람은 그만 가자 손목을 끄는데

저 꽃, 미동도 않고

폐궁(廢宮)의 한을 써 내려갑니다

한 줄 쓰면 마른 잎이 수런거리고

또 한 줄 쓰면 달빛이 흐려지고

구구절절 애곡단장.

 

한 철 살다 가는

꽃의 사연 읽느라 별이 지는데

사계가 무성한 당신은

단 한 줄도 읽히지 않습니다.

 

 

 

 

 

, 늙는다

 

 

한참인 줄 알았더니

, 늙었다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아

꽃피는 날이면 피실피실 실없이 웃고

남의 말 들어주다 북받쳐 펑펑 울었는데

 

백화제방(百花齊放)!

꽃사태 진 언덕을 무덤덤이 넘어

낮달을 따라 걸어가는 서편 내리막길

 

() - ()

바람 끝 늙은 물오리나무

정수리에 피워낸 무수한 암수 꽃들

제 몸을 비벼 내는 소리

무릎뼈 드러나도록 피워낸 저 아름다운 경건.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무언가를 잃어버린 봄날

, 오늘 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