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최윤경 시인'

'흔들리는 것은 무엇인가' 외 4편  

[이름]최윤경시인
[경력]전북 익산 출생
2005년 월간문학세계 등단
한국문인협회회원       
시원문학회 동인
우리시 회원 
시집으로  《 햇살을 부르다 》 와  《 텅 비거나 혹은 가득차거나 》가 있음   

 

 

 


 
 
1.흔들리는 것은 무엇인가 
                                  최윤경
 
길을 나섰다
버려진 생각들이
옷소매를 붙잡고 늘어진다
이 길 끝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문신처럼 새겨진
또 하나의 약속을 위한
방황의 걸음은 멈추어지지 않는다
다만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
푹 패인 웅덩이에 고인 흙탕물 속에서
푸른 동그라미
나이테를 그리고 있는
청맹과니 같은 삶의 무게가
더없이 무겁게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2.순서에 대하여        
                               최윤경

낯선 표정들이 서성이는 승강장
각자의 삶에 쫓기는 곳에서
내리고 타고를 반복하며
종착역에서 회귀하는 열차처럼
어쩌면 우리도 다시 돌아와 앉은
또 하나의 자리가 아닌지
정해진 순서가 없는
이별의 시간들이 스쳐간다
생의 꼭짓점에서 독주를 대신하듯
전철의 의자에 몸을 실으면
벼리어 온 생각들이 
엉킨 선로가 뜨겁다
 
 

 


3.낯선 바닷가
  
                                                      최윤경
모래위에 새겨진 약속을
질투라도 하는지 파도가 밀려와
지우개가 되어 지고
바람은 비밀스런 약속을 손에 쥐어주고 간다
몇 방울  떨어지는 비를말없이 받아들이며 
잔잔한 미소를 그리는 바다
모래위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멀리  떠나가는 한 척의 배가
풍경화로 남겨진다
파도가 다녀간 흔적 가운데
떨어진 꽃 이파리 하나
존재의 의미를 묻고 있다
인생은 이렇게 사는 것인지
저항의 몸짓이 살짝 흔들리다가
앞으로 전진
뒤로 후퇴하는 삶이 
파도를 닮았다
 

 


4.속삭이는 것
                                  최윤경
 
문 밖에 서 있는
목어는 바람에 잠든 듯
고요하다
장작불 사이로 스며드는
가을이 한차례 감기를 앓았는지
콜록거리며 아픈 척 잿빛이다
만추의 나뭇잎은 서둘러 
길 떠날 채비를 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많은 일들이
땅바닥에 버려진 채
묻어지고 또 쌓여간다
움츠린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어스름 저녁에 
촉촉한 눈가를 스치는 풍경들
그 함정에서 허우적거리는 날들이
비밀스럽게 속삭이고 있다
 
 
 
 
5.숯 검뎅이 

                                  최윤경
 
이미 오래전부터 그랬다
마음이 검다
새까맣게 타 버린 속마음을
들키기 싫어
허허롭게 허공을 향해
쏟아 붓던 말들이
덕지덕지 까맣게 딱지가 앉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이 검다고 웃으며 말 할 수 있는
삶의 여유가
그나마 위로가 되어 줄 뿐
아무도 숯을 파헤쳐 보려 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불씨하나
조심스레 꺼지지 않게
끌어안고 있다는 비밀이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밤 속으로 꽁꽁 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