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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 '신현복 시인'동행(同行) 외 9편( 시집 ‘동미집’에서)
복지TV청주방송 | 승인 2019.12.31 10:54

 

시인 신 현 복( 1964 )

 약력 
 충남 당진 生
『문학.선』으로 등단( 2005년 )
 시집 <동미집/2009년>, <호수의 중심/2017년 >, <환한 말/2018년> 다시올문학상 수상(2018년) 

 

 

 

 

 


1. 동행(同行)
                                           신현복

강물 흐른다 갈대 흔들린다
황오리 날아가고 어둠 밀려오고
찰랑찰랑 달빛 노는 소리
온갖 풀벌레 소리 새 소리 바람 소리
노을 진 저녁 강 풀어 놓는다

방관도 집착도 없다

 

 

2.못을 박다가
                                                신현복

메밀꽃 핀 그림 액자 하나 걸으려고 
안방 콘크리트 벽에 박는 못 
구멍만 만들고 풍경은 고정시키지 못한다

순간, 그 구멍에서 본다 

제 몸의 상처 포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벽 
견디지 못하고 끝내는 떨어져 나온 조각들 

벽, 날카로운 못 끝을 생살로 감싸 안아야 
못, 비로소 올곧게 서는 것을 

망치질 박힘만을 고집하며 살아온 나 
부스러지려는 자신을 악물고 
기꺼이 벽으로 버티며 견디고 있는, 
저 수많은 사람들 향해 몇 번이나 
못질했던가 

꾸부러지지 않고 튕겨나가지 않고
작은 풍경화 한 점 고정시키며
더불어 벽으로 살기까지

 


 
3. 매운정
                                                                             신현복

어머니, 몇 물째 따다 말리시는 건가요

할머니 방에 고추가 널려 있다
반쯤 마른 채 매운 냄새 짙게 풍기고 있다
듬성듬성 짓무른 것도 보이고바싹 마른 것들은 푸대에 담겨 있다
아랫방에다 말리면 되는데 싶어 여쭸더니
창문을 그렇게 열어 뒀는데도
돌아가신 할머니 냄새 도무지 가시지 않아
심통 좀 부렸다며 슬쩍 웃으신다

그렇구나, 방안 가득 이 붉은 것들 한때는
시퍼렇던 시집살이로구나
눈물겹던 청상의 여름날들을
이렇게 꼬들꼬들 말리고 계셨구나
그럼 푸대 속 저 마른 것들
하, 설움이구나
설움도 곱게 말려 빻으면 매운 情
맛 돋우는 양념이 되는구나

몇 물을 더 따다 말려야 끝물인가요, 어머니 

*푸대 : 포대의 사투리

 

 

4. 동춘(凍春)
                                                             신현복

곱창집에서 소주 한 잔 했네
하는 일들은 좀 풀리냐고 묻지 않았네
애들은 공부 잘 하느냐고도 물어보지 않았고
새로 출범한 정부의 공약에 대해서도 논하지 않았네
'아줌마 정구지 더' 하고 외치는 소리에
부추 넣고 끓인 재첩국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숙취해소에는 미나리가 최고라며 너스레를 떨다가
고향집 밥상 우거지에서 시락지까지
부드럽게 잘 넘어가는 것들로만 안주 삼았네
곱창도 오독오독 질기지 않았네
일차로 다 씹히는 이런 날도 있어야지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작정들 하고 나왔는데
생각지 않게 눈이 내렸네

오늘은 진짜 그냥 갈라고 했는데
야, 야 눈 오잖여~~

 

 


5. 서울뻐꾸기
                                        신현복

삽교호가 바다였던 고향 당진은
통통배 몇 척 오가는 외딴섬 같아
신례원 거쳐 온양 천안으로 돌아야 겨우
서울로 갈 수 있었다
그 허기 깊은 숲에서도 뻐꾸기들
낮에만 울었다

진달래 꽃망울 터지듯
폭음 울리기 시작한 후 몇 해
서울 가는 지름길이 생긴 날 저녁
내 친구 영규도 헬기처럼
큰 날개 달겠다며 서울로 갔다
칡뿌리 씹듯 씹어대던 유조선 만드는
과학자 꿈 포기하고

어느 봄날, 고향에 온 녀석은

뻐꾸기란 이름의 웨이터가 되었다고 했다
술집 우거진 영등포 숲에서
밤에만 우는 서울뻐꾸기가 되었다며
함께 놀던 느티나무 아래서
밤새 울고 또 울었다
나쁜 녀석, 내게 처음으로 
그쓰디쓴 양주를 먹인

매봉재 길 넓어지는 속도로 
숲 사라져 나도 서울로 왔다
일년에 서너 번씩 동창회를 하는데도
그 뻐꾸기는 오지 않는다
나쁜 녀석, 저 땜에 동창회를 
어느 땐 낮에 어느 땐 밤에 
번갈아서 하는 줄도 모르고
깊이 숨어 울지도 않는
화장실에서 뻐꾸기 날아왔다 간
흔적, 작은 스티커를 보았다
"현관에서 뻐꾸기를 불러 주세요,
성심껏 울겠습니다"
혹시, 냄새나는 골방에서
고추장에 꽁보리밥 비벼 함께 먹던
내 친구 영규 놈인지
그 밤 문득 그 녀석이 보고 싶어져
나만, 뻐꾹뻐꾹

코리아나 나이트클럽에서 울었다

 

 

6.동미집
                                                                                         신현복
 
마을 끝집, 부엌 하나 긴 방 하나 피리 같은 바닷가 그 집에는 늘 바람 있었네  하나가 울면 나머지는 울 수 없었네  운동화 자전거 또박또박 끊어 울었네 고등학교 대학교 점점 세게 울었네  악보에는 반음 유난히 많았네  서로 눈치보다 박자 어긋나기도 했네  가끔은 음 갈라질 때도 있었네 5남 3녀가 다 울음보 간신히 틀어막으면 엄마가 울었네 뒤란에서 새 나오던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그 느린 울음소리, 어린 막내 철없이 끼어 울면 이때다 모두가 다 울음보 확 열어젖혔네  끊어질 듯 찢어질 듯 한 옥타브  높아졌네 하나 되어 마음껏 울고 나면 처얼썩 쏴아 철썩 쏴아아 말갛게 마알갛게 부서지던, 동미집은 바다 첫집이었네

 

 

7.면상장기
                                        신현복

뒷산 아버지 산소에서 내려다보이는 추수 끝난 들판은 알 거두어들인 장기판이다 통나무 그 촘촘한 결 그대로 살아 있던, 아버지 술심부름 시키려고 슬쩍 펼치시던 그 장기판이다 아버지는 항상 면상장기를 두셨는데 늘 象馬土로 수비부터 견고히 하셨다 물려줄 것 없는 너희 5형제도 이처럼 살아야 한다 하시며 兵들을 중앙으로 뭉쳐놓은 다음에야 車包 공격을 시작하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그 빗장수비만 고집하셨다 한 번도 져주지 않으셨다 옛 생각에 이번에는 내가 먼저 청해보지만 꿈쩍도 않으시는 아버지, 내 배낭 속에 있는 것 당연히 막걸리려니 여기시는지 도무지 미동도 없으시다 하는 수 없이 휑한 장기판을 막 접으려 하는데 장끼 한 마리 들판에서 날아올라 옆 산에 내려앉는다 읽지 못한 包將이다

외통수에 걸린 그리움이다

 

 

8.쪽문
                                       신현복

십 층 허공의 현관문 하나뿐인
아파트, 나

아버지 노하시면 대문 잠그셨네
날 밖으로 내쫓고는 빗장까지 거실 때면
나 들판 갈대숲에 숨어 흔들렸네
울다가 졸다가 어둑어둑 무서워지면
언제든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네
내 유년의 집에는 쪽문이 있었네
대문 한쪽에 머리 숙이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이 하나 더 달려 있었네
아버지 아무리 화가 나셔도

모르는 척
그 쪽문은 열어 두셨네

 

 

9.불혹 넘어
                                       신현복


깜짝 수는이제 통하지 않는다
초반 몇 판에 이미 주고 받았다
실력 차 많이 났다면
한두 판에서 벌써 끝났을 일
서로 수 드러난 피장파장의 내기 장기다
상대는 또 면포장기를 둘 것이고
나 역시도 익숙한 면상장기를 택할 것이다
나는 졸을 죽이지 않고 중앙으로 몰아야 할 것이고
상대는 상을 버려서라도 내 졸을 잡으려 할 것이다
내 포가 중앙수비에 치중하지 않는 만큼
상대도 포의 중앙배치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 묘수는 실수를 줄이는 것
자충수를 덜 두는 것이다
단 한 수의 외통으론 판 끝나지 않는다
나도 상대도 깜빡한 외통은 물려 달라 할 것이고
한 수 정도는 서로 그러려니 할 것이나
불리해질수록 내심 더 큰 한방을 노리는 법
피차 물릴 수 없는 외통을 경계하면서
밀고 밀리다 보면 뻔하다 싶은 판에서도 여전히
아차, 허허, 이런, 휴우, 아아
장군이면 멍군이고 멍군이면 다시 장군이고
어차피 갈 때까지 가야 끝이 나는
자존심의 내기 장기다
이제부턴

 

 

 

10.황혼 무렵
                                       신현복

가을걷이 된 뒷간 옆 퇴비사의 호박넝쿨
그 뽑히고 잘린 세상에서도
뭉구러진 암꽃 한 송이 노을빛에 여전하다

썩지 않고 마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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