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학콕 당신의 시
당신의 시 '김영은 시인'고추 말리기 외 9편
복지TV청주방송 | 승인 2019.12.24 11:24

약력
2003년 《시사문단》 등단, 다시올문학 발행인, 도서출판 다시올 대표
동인시집 『어떤 초상화의 모티브』 maxim3515@naver.com

 

 

 

 

 

 

 

고추말리기 
                                                                    김영은 
김포장. 마송장, 더 멀리 강화장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김포에선 고추 말릴 시기가 도래했다고 한단다.

한낮 마당에 쏟아지는 햇볕을 놓치면 큰 사단이라도 날 듯
집집마다 고추 말리는 진풍경이 벌어진단다

고추 한 자루 말리기를
고추만 사다 널어놓기만 하면
고추 말리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하늘이 흐렸다 개었다 심통을 부린다고 한단다

구름이 산 뒤에 숨었다 튀어나오면 거시기도 아닌 
고추 한 자루를 맘 편히 만져본 적이 없단다

애국가 3절의 
‘가을하늘 광활한데 맑고 구름 없이’ 까지 운운해도
구름은 꼭 숨었다가 비를 데리고 나와 퍼붓곤 한단다

올해는 일기예보를 들었는지 고추 꼭지를 따고
가을 뙤약볕과 속전속결로 담판을 지었단다

포쇄하여 포대에 담은 마른 고추에서 
‘타닥타닥’ 오진 소리가 난다는 즐거운 비명이
맙소사 우리 동네에 풍문으로 들려오고 있단다

유재철의 수필은 온통 붉다 그래서 시다

 

 

집을 짓는 일
-금계의 집 
                                                     김영은


새장 될지 닭장 될지 져봐야 알지만
12각 팔각지붕 각을 맞춰 뚝딱뚝딱 
들어앉을 터에 쭈뼛쭈볏 올라오는 희망의 소리
산새 소리보다 크고 봄보다 더 파릇하다

닭 울음소리 들으며 아침을 열 때마다 
내 걸음을 공구 앞에 끌어다 놓고
아웅다웅 하다 보면 어느 날은 환하고 
어떤 날은 징허게 더 흐리다

투덜대는 말소리와 망치소리를   
시올이와 소리가 삼키며 왕왕 짓어도
개소리 말고 내처 봄을 서두르라며 
타카 박는 이음새로 당기고 밀치다보면 
희망의 각도와 기대의 간격이 틀어져도 
짓는다는 일은 사랑보다 더 눈부시다
 
닭이 들어갈지 금계가 들어갈지는
눈 흘기는 봄에게 끌려가봐야 안다

 

 

구슬을 꿰며
-내 친구 헤이

                                                                                                김영은
  그녀가 궁금해 안부 그리운 날이 많아졌네

  갇힌 물고기처럼 난로 앞 의자에 앉아 구슬을 꿰며 시간을 더듬자 쑥을 뜯던 그녀와 쑥떡을 만들어 먹던 기억이 그리운 입맛을 다시게 했네 이심전심의 기운이 닿았는지 운명처럼 그녀가 온다는 소식에 평행선을 고수하던 내 마음과 기별도 없이 온다는 그녀의 마음이 비로소 합궁에 들었네 그리움이 나보다 먼저 환하게 꽃을 매달았네

  마실 나온 그녀의 손에는 얌전한 솜씨가 어미의 치맛자락을 잡은 자식처럼 따라 왔네 우정을 튀겨낸 쌀강정에 농사지어 말린 무말랭이 선물하고픈 마음으로 겨우내 몸살을 앓았을 그녀가 잊지 않고 의리까지 촘촘히 엮은 수세미에 지난 크리스마스를 인증하는 꼬리표까지 우아하게 달고 기쁨처럼 당도했네 계약이 만료된 시간 속으로 나침판 같이 정직한 그녀가 내게 오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네 

  그녀에게 오랫동안 준비한 수갑을 채워야 겠네

 

 

 

구피의 일생
-떼 죽임을 당하다

                                                       김영은


바쁘다는 이유로 물갈이 시기를 놓쳐
구피가 떼죽음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수족관의 맑은 환경을 채우려 물을 갈아엎는데
구피 한 마리 바닥을 기며 세상을 헤매고 있다
미안함에 무심함을 탓하며 물 반을 채워 부었다 
물 만난 구피 바닥의 종지부를 찍고 세상 향해 
활기차게 꼬리를 흔들며 원망 아닌 원망으로
열댓 마리의 치어를 방류해놓고
방어하기 위해 떼를 지어 다니는 구나
탁해진 물의 수위를 두려워하며
페로몬을 무제한 방출했을 텐데  
홀로 방치된 채 수개월 숨만 쉬며 
생명을 지키고 있었구나

볼록한 배에 알을 품은 채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서 여태

부딪히지 않고 이동하고 있었는데

미안하다
수온을 높여주기 위해 
온도계를 넣는다는 것이 그만 
뜨거운 물에 수장시켜버렸구나

 

 

시의 집 

                                                     김영은

두 칸이나 지은 시의 집에서
즐거운 아침을 먹는다

흔히 말하는 그분이 오셨는지
새집 마당 가를 서성이는데
정작 그분은 보이지 않았다

홀대할 수 없는 분이라고
정중한 대접을 준비를 하면서
오시면 맨발이라도 달려 나가 
넙죽 안고 모셔올 태세로
분주하게 손가락 움직이는데
단독주택, 아니 서너 칸짜리 
복합주택까지도 가능했다

부실 공사라 비웃을 수도 있지만
난 지금 최선의 집을 짓고 
마무리 시공으로 몹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안개는 기억하고 있다

                                  김영은


깊어지기 싫은 겨울비 
사부작사부작 추적이더니
기어이 안개를 몰고 왔다

사느라 바빠 잊고 있던 기억
안개를 따라와 깃털 같은
풍경을 그리고 있다

동화와 같은 삶에 
항시 물음표를 부여해
잠시 내려놓았을 뿐  
언제고 펼치고 싶었던 꿈

걷어내지 못해 안개조차 
그리움이 되고 만 세상 속으로
공작새가 날개를 펴고 있다

 

 

 

초충도 속을 거닐다 

                                                                                                  김영은


  우리 말 이름이 닥풀이라며 어느 시인이 포트에 어린 모종을 몇 개 들고 와 마당가에 낮은 자세로 앉아있는 패랭이 옆에 심어놓았다. 6월이 되어 꽃이 서로 다투어 만발했다. 꽃 중의 왕이라는 모란도 한방에 누를 기세로 화려하게 피어가며 절정으로 스러지는 양귀비를 제치고 미색의 여린 꽃대 올라오는 것이 초충도 여덟 폭 병풍 속을 거니는 사임당이 저토록 정숙하고 단아했을까 신선한 충격이 다가와 그 속을 함께 거닐자 하네

  올해도 모종을 심어놓고 한가한 유월을 보내며 푸르게 당도한 칠월을 건너는데 해바라기마저 못 믿어 서럽다는 한낮의 태양이 마당 한가운데를 빙빙 돌다 무거워 진저리치는 오이 수박을 걷어온다. 온종일 펼쳐놓은 초록 사이로 못내 피어버리고만 황촉규화를 바라보며 두려움 없이 덩치만 키우다 펼쳐놓은 화폭 같아 나비, 개구리, 아니 얼룩말이라도 그리고 나면 맨발로 사임당이 뛰어나올까 싶어 맨드라미 자지러지는 마당을 거니는데 기어이 스러지고야 말 태양이 화끈거리는 내 등에 붙어 같이 노닐자 하네. 

 

 

 


누가 나를 데려갔을까

                                                                                               김영은

 

  엄마를 할머니라 부르는 게 싫어서 사촌의 어린 딸을 언니 몰래 꼬집은 적이 있다. 세월이 하얗게 물들어 손녀딸이 큰지도 모르게 자지러지는 낯선 그림자가 검지를 흔들며 고지가 바로 저기라고 가리킨다. 

  보따리에 숨겨둔 그리움이 오랜만에 만나도 한발 한발 발걸음 떼며 할미, 오달지게 달려와 품에 안기면 사나흘 불을 지펴 호되게 몸살을 앓다가도 내 안에 나 없는 여백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행 연습하는 내 남루한 그림자도 손녀 앞에선 눈부시다.

  가족의 행선지(行先地)를 챙기며 제아무리 백세시대를 노래해도 점점 빨라지는 속도의 시속 앞에선 위기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루가 다르게 똘똘해지는 손녀를 안으며 세월도 한통속이라는 단서를 끊어내지 못해 하얀 할미 되는 것을 수긍할 수밖에 없어 손녀의 눈짓과 몸짓을 그리워하기로 했다.

 

 


겨울비가

                              김영은


겨울비
축축이 내리는 창가에 앉아 
소주 한 잔을 따루고 

월동에 들어가 자리 잡은 
다육식물을 위해 온전히 
음악을 틀어놓고

소주 한 잔 건배

눅눅히 
내려앉은 밤과 독대하며
달리던 시간도 멈추게 했던
내 청춘을 위하여

또 한 잔 따루며 건배

겨울비처럼 잠시 왔다 갈 세상 
발자국도 남길 수 없어 고즈넉한 
이 밤의 진풍경을 따루고 있는
지금을 위하여

다시 한 잔 건배

 

 

 

 

 

 


가을 편지
                                                                                                    김영은
 
  키 큰 소나무 아래 금잔화 무리 지어 노랗게 피어있는 가을 옆에 넓은 이파리를 자랑하는 하얀 옥잠화 그 우아함을 짓밟기 위해 빗방울 후드득거리는 것을 보니 가을이  성숙해지나 봅니다.
 
  더도 덜도 말고 옥잠화처럼 하얗고 순수했으면 좋겠다는, 화려하지도 않고 담담해 보이지만, 그윽한 향기를 지닌 그런 여자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봄, 여름을 무심천에 무심히 흘려보내고 아쉬움만 남는 계절이 어느새 내 옆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물들이는 아! 또다시 가을, 그 어쩔 수 없는 외로움과 그리움의 계절이 당도했나 봅니다. 
 
  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고 그윽하게 돌부처의 눈물을 닦으며 고요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는 긴- 침묵의 시간, 너무 길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 이 외로움은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있지만 그리움은 꼭 그 사람이어야 한다는 귀하고 귀한 허상의 인연이 부적처럼 찾아들 것 같은 가을에 허기진 고백을 합니다.

 

 

 


webmaster@ccwtv.kr

<저작권자 © 복지TV청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복지TV청주방송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보도요청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충북 청주시 흥덕구 1순환로 581-0(봉명1동 892번지)  |  대표전화 : 043-268-4441  |  팩스 : 043-268-4009 / 043-278-4441
등록번호 : 충북아00159  |  등록년월일: 2015년04월23일  |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18-충북청주-0260 호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용범  |  발행인/편집인 : 박용동
복지tv충청방송의 기사를 무단 전재 · 복사 · 배포 등을 금하며 이를 어길 시 저작권법에 저촉됨을 알려드립니다
Copyright © 2020 복지TV청주방송.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