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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 '문선정 시인'묘사, 너를 쓰다듬는 어지러운 감정 외 9편
복지TV청주방송 | 승인 2019.11.05 10:16

[시인] 문선정 

[약력] 경기 구리 출생. 2014년 《시에》로 등단. (사)한국작가회의회원. 
          <다층시문학회> <숨,詩작가들>활동.

 

 

 

 

 

 

 

 

 

 

 

 

1. 묘사, 너를 쓰다듬는 어지러운 감정

                                                                                 문선정   

   1. 
   이불 빗자루 화분 쓰레기봉지 물소리 젖은 빨래 
   이런 개별적인 노동의 틈에서 볼록해지는 감정을 누른다
 
   알약 하나에 일렁이는 멀미를 가라앉히고 나는 병을 통과하는 중인데, 아픈 나로부터 멀어진 너는 나무속 외딴 섬처럼 옹이에 갇혀 사는 구나

   나는 생각해, 
   우리는 입술의 말을 쪼아 먹는 잘 못 길들여진 육식성 검은 새
   잘못된 드로잉 잘못된 배색
   잘 못 섞인 색깔들이 수군거리는 지독한 불량덩어리
   그러한 실체 없는 그림자들이 
   5절지 종이 위에 주춤주춤 펼쳐진다

   4B 연필심은 힘을 조절하는 능력을 타고 났지 


   2. 
   듣고 있니?
   아버지 결을 물려받은 순한 호칭을 부르고 싶어라 
   현관 앞 화분 부스럭거리는 쓰레기봉지 덜 마른 빨래 위로 눈이 내리네 앵두꽃이 앉아 있는 나뭇가지에 함부로 눈이 내리네
   3월의 눈처럼 너는 자꾸 어디로 사라져, 아무 말도 안했는데 

   깃털처럼 보드라웠던 시간은 어디서 웃고 있을까?
   흑연가루처럼 몰려왔다 먼지처럼 사라지는, 얼굴이 있던 자리, 세상에 눈 먼 꽃잎은 다 띄워 놓고

 

2. 아무래도 긴 긴 밤

                                                  문선정  

  딸각, 스위치를 켰을 때  

  어둠이 사라지는 소리, 딸깍
  반짝거리는 타일에 부딪친 비명, 피할 곳이 없다

  한 쌍의 더듬이로 질서 없는 대륙을 횡단 하는,
  온 몸이 마디마디 이어진 오싹한 녀석 
  못 본 듯 지나치라는 관용의 뜻인지 어디 한 판 붙어보자는 으름장인지 
  정수리에 쏟아진 소름이 발등까지 흘러내릴 때
  이런 애매한 공식 앞에 몸을 부풀린다
  핑핑 솟아오르는 소름,
  소름으로 버무린 긴장을 좁쌀만큼씩 뜯어 먹으며
  바닥으로부터 얼어붙은 발가락부터 독을 물고 있는 이빨까지 
  통째로 붉은 지네 한 마리, 
  바구니로 확 덮어 버렸다 

  불면에 시달리는 실핏줄이 더듬이로 변이 되는 모퉁이 시간, 
  여러 개의 나직한 발을 끌고 다니는 조그만 소리 어둠이 벽이고 어둠이 문턱인 붉은 무덤 안에서 할퀴고 찢기고 물어뜯는 소리의 순서대로 나는 무너진다  

  문득 내 속에 잠식하는 못 된 필라델피아를 향해 착하지 않은 글리벡이 기습 공격 할 때 검게 그을린 커다란 울음이 옆구리가 터진 채 희미하게 떠다니는 긴 긴 밤, 
  소리는 이런 방법으로 그럴듯하게 나를 이기는 것이다

 


3. 성모상에서 흘러내린 푸른 망토처럼

                                                                  문선정


  나는 삐뚤어집니다
  얼마나 재미난 일인가요
  삐딱하게 목을 꺾고 삐뚤빼뚤 걸어 다니며 낯설어지는, 나
  우리 행복한 말다툼이었던 잠언 같은 푸른 말씀들을 던져버립니다

  랄랄라, 오늘도 유쾌한 하루

  나의 사색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나의 성실한 기도는 어디로 가는지
  이제 알고 싶지 않습니다.

  어둠보다 더 두려운 오염된 나를 감싸고
  나의 붉은 혓바닥은 저 혼자 키득거립니다
  푸른 바다보다 더 깊고 넓다던 당신의 역사를 따라다니던 죽은 감정의 각오를 지붕 위로 던집니다

  당신 혹시 보았나요?

  내 몸집보다 훨씬 큰, 당신이 불쌍히 여겼던 깨진 그림자의 크기와 감정을,
  지붕 위에 버려진 위태로운 내 울음의 크기와 감정을.

  랄랄라, 나는 제대로 삐뚤어졌습니다
  오직 당신에게 눈멀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4. 우리가 천국이라면
 
                                                              문선정


  잠결의 뒷골목으로 비바람이 들이쳤다
  잠의 지퍼를 실눈처럼 열고
  눈꺼풀 밖을 지나던 누드의 구름을 찾는다
  나는, 나는 순하고 하얀 살결이 마음에 들었는데

  애당초 구름은 불온한 데이터로 설계되었다 하자
  침묵의 주파수를 거느리고 우아하게 다가와
  하체 없는 석고의 비유처럼 표류하는
  바람과 내통하다 바람에 물들어 홀연히 침몰하는, 구름씨
 
  빗발이 날리고 있다
 
  화살촉처럼 뾰족해지는 4시의 기분
  살림이 가난한 집을 말아먹을 것처럼 온 세계가 흑백으로 가득하다
  물짐승 같은 울타리나무의 늑골에서 흘러나오는 울음
  내일은 내 창가를 갸웃거리던 새의 발목을 잘라야 겠다
  훌쩍이는 원색의 감정을 끓여 애지중지 모란도를 그리다 멈춘, 눅눅한 한지 같은 날
  쓸모없이 한껏 치장한 모란모란모란꽃,
  발목에 힘을 주고 살아도
  숨 없이 피고 지는 질서처럼 쾌활하고 활기차게 망가지는 천국의 오후라 하자
 
  빗발이 휘파람을 날리고 있다

 

 


5. 슬기로운 겨울생활

                                                        문선정

 

단맛에 빠져 한 계절 탕진해야지
즐거움이 이뿐이라니 이렇게 달콤한 절망도 없다

쇠부엉이 울음소리 적막을 연주하는 후미진 곳에서
나는 즉흥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충동적으로 쓸쓸하다고 애원하지 않는다
감이 익기를 기다리는 일도 명랑의 한 조각
고요의 분말을 한 줌씩 털어 넣으며 소리 없이 익어가는 감
추위가 얼었다 풀렸다 반복하는 동안

주홍빛 생살을 파먹고 붉어지는 나를 관찰해야지

어쩌다 덜 익은 감 한 입 물면
온 세상 떫은맛을 동원해 나를 몰아세우던 당신을 개입시켜
입 안 가득 채워지는 모래알 같은 말을 받아 적어야지
쌈닭처럼 달려들지도 못하고 벌어지고 다물어진 떫은 관계
저장된 이름을 삭제하듯 웅크린 곡절을 뱉어내야지

겨울은 길고 박스 속 남은 감도 충분하고
이런 다사로운 허기가 즐거움의 전부라니
해방이다

 

 

 

 

 

6. 두 눈을 닦다

                                                         문선정


  안개가 저 들판까지 먹어치우더니
  부유물이 떠다니던 안구 위로 안경이 올라 왔다

  반짝
  불이 켜졌다

  가로등이 우우 일어나고 
  꿈벅꿈벅 졸고 있던 길이 눈을 치켜 뜬다

  수요일이 달린다

  둥그렇게 말고 있던 몸통을 쭉쭉 내딛으며
  안경이 달린다 

  왼쪽으로 휘어진 골목과 울퉁불퉁한 오른쪽 길,
  이대로라면 희망이 슬픔보다 더 고통스러운 길에 주저 앉아 마음 놓고 울 수도 있겠구나

  오늘 안경이 좀 까칠하다

  나를 잘 고용하렴
  어디로 돌아가도 일요일이 있겠지만
  나 없이 토요일까지 갈 수 있겠니?

  마음을 모아 눈을 닦는다

 

 

 

7. 신전 가는 길

                                                            문선정


  신전이 되어버린 은행나무가 있다지

  꼬깃한 주소를 들고 기차를 탄다
  우러러도 모자랄 생을 감히 더듬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한 발 짝도 다가서지 못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무의 봄이었던 여름이었던 풍장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일천년 동안 써내려간 경전을 만나러 가는 길

  바람이 흩어졌다 다시 모여드는 속도로 흔들리는 문장들이 경을 왼다고도 들었다
  노랗게 불어오는 바람을 따먹고 노랗게 익어 천 년이라고도 들었다
  내게 문을 열어줄 시간 앞에서 자세를 고치다가
  정작 드는 길을 지나친다고도 들었다

  얼마나 더 가야 경전에 닿을지
  끝 간 데 없이 걷고 또 걸어야 닿을 듯

  노랗게 발하는 주소를 들고 길을 걷는다

 

 

 

 

 


8. 마그리뜨 풍으로 창문 만들기

                                                                문선정
     

긴 장마로 무연해진 몸의 뒤척임이 지루해지는 순간
르네 마그리뜨의 그림 같은 하늘이 창문에 걸렸다
마그리뜨씨는 지난 밤부터 사다리를 타고 올라 
별을 그렸다가 
푸른 덧칠을 한 뒤 구름을 그리고 내려왔으리라
마그리뜨씨의 그림에서 차르르 햇살이 내린다
나는 해의 냄새를 밟으면서 
지루할 뻔 했던 하루를 데리고 가만가만 걷는다
이런 나를 내려다보는 그림이 술렁거리기 전에
날개를 편 새의 모양으로 하늘을 오려내어 
내 가슴에 창문 하나 만들고 싶다
세상에 그려진 무수한 이정표의 끌림에도 
오직 내게로 날아든 새는, 
구부정한 나의 허리를 일으켜 세워 주리라
창문 옆에 커튼처럼 흩날리는 키 작은 나무 한 그루 심으면
휘어지려는 가슴을 콕, 콕, 콕,
쪼아대도 성가시지 않는 새와
잎 그늘에 어리는 나무의 짙어지는 생과 구부정한 나의 생이
슬프거나 기쁘거나 한 울음을 터트리며 살아 갈 수 있겠다

 

 

 

 

 

 

9. 사소한 웃음

                                                         문선정

 

한동안 소식 끊겼던 사람에게서 카카오톡이 왔다
한겨울 느닷없이,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냐 묻는다
언젠가 마트에 가면 아이스크림은 꼭 사세요
하던 말이 생각났다

대답도 하기 전에
바닷가 풍경 사진 한 장이 날아왔다
물결치는 바다를 배달했으니
무엇을 줄 수 있냐고 묻는다

속이 깊은 바다와
걸음이 예쁜 구름이 하늘을 지나는 풍경을 전송하고
지구에서 가장 푸르게 출렁이는 것을 주었으니
그대는 내게 무엇을 더 주실 수 있는 지요? 물었다

빙수가 먹고 싶은데 어떡하느냐 딴소리를 한다
기온이 뚝 떨어져 바닷물이 꽁꽁 얼면
짭쪼롬하고 달큼한 빙수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가 킥킥 웃는다
나도 붉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동그랗게 웃었다

달빛으로 푸른빛이 도는 이마가 시릴 때까지
우리는 킥킥거리다 헤어졌다
무거운 두뇌가 갑자기 가벼워졌다

 

 

 

10. 배경

                                                                      문선정

 
  쌀을 씻고 있는데 
  울음이 다가 왔어

  평형을 잃은 우리의 어떤 순간이 왈칵, 나를 덮쳤을까

  정오에는 여름나무 아래서 커피 한 잔이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왔고 
  문득 당신의 안부가 돋아나 하루의 절반을 헤엄쳐 다녔어
  여섯 시의 언저리, 우울이 떠다니는 물가에 서서 쌀을 씻고 있어

  정갈하지 못한 낱알 같은 뿌연 말들을 흘려보내고 있어 
  이렇게 분분히 당신 속으로 흘러들어 중얼거리는 나를 
  바라보네,
  문득 약속도 없이 먼 거리를 달려온 당신의 맨얼굴인가 했네

  해질녘 뾰족하게 솟구치는 울음의 발행처를 들고 서 있다가 
  눈물 몇 방울 밥물에 빠지는 걸 보고 눈을 감아버렸어

  속눈썹은 슬픔이 부서져 내리기엔 가장 좋은 장소 

  뜨거운 눈물 냄새를 담아 소리의 재생기처럼 압력밥솥은 벌벌 몸을 떨고 
  이제 와 다시 밥물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때론 명쾌하지 않는 답이 아무 뜻 없이 앞장 서 걷듯이 
  울음이 다녀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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