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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 '한영채 시인'신화마을 외 9편
복지TV청주방송 | 승인 2019.10.22 09:19

〔이름〕 한영채

〔약력〕

* 경주 출생
* 2006년 <<문학예술>> 등단
* 시집 『모량시편』 『신화마을』 『골목 안 문장들』

 

 

 

 

 

 

 

 

 

 

 

1. 신화마을
                            한영채
 고래가 가파르게 날숨을 뿜는다

신화로부터 멀리 와 버린
여기, 
어디쯤인가
관절마다 뙤약볕이 욱신거린다
화첩처럼 펼쳐진 골목 고래들 벽면을 오른다  
등대처럼 서 있는 해바라기 벽화
바람이 불어도 미동이 없다
어제 오늘의 경계가 없는 지금
혹등고래가 헤엄을 치느라고 
신화마을이 파도처럼 일어난다
등뼈 굵은 황소고래가 지나가고 
창문아래 나팔꽃도 핏빛으로 피어나고
늙은 아버지, 고래를 기다리다 뱃고동 소리로 돌아 올 때
마을은 또 하나의 신화가 된다
맑은 눈빛이 내려다보는 
창문에 턱을 괸 누렁이가 졸고 있는 사이
벽화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리고
들숨을 뿜은 나도 벽화 속으로 들어간다
평화구판장엔 막걸리 사발 오가고
관절 식힐 비구름이 신화의 언덕을 오를 때
고래를 타고 산마을을 내려간다 
 
 *장생포 신화리 벽화마을

 

2.빛이 들지 않는 시간
 -송현이

                                                한영채
 비가 내렸다, 그날

어둠 깊이 잠든 시간의 언어는 
풀어지는 고요를 채울 수 없다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렸다 
고개 들어 기억 할 수 없는 미로迷路
빛이 들지 않은 시간
족장은 물처럼 사라지고 
화석 속 젊은 미소는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엔 빛보다 깊은 그림자 
그를 사랑한 나는 순장이었을까
새끼줄로 묶인 나였을까
납작한 돌이 수형번호를 달고 돌 덧널 된
가시개미가 진흙 속에 빠진 듯
켜켜이 쌓은 성城안에 빈자리만 남았다 
홍가시 이파리 붉어질 무렵
쏘아 올린 빛의 한 켠 
그가 달아준 귀고리가 구석을 지키다 깨어났다 
빗소리가 들리고, 겹으로 된 긴 항아리 
볍씨와 콩, 밤과 복숭아씨가 궤적으로 
엇돌다 굳어버린 씨앗 
뚜껑달린 바리 속 그들이 여기, 
사랑의 증표는 무엇, 무엇일까 
구름과 햇볕과 우레의 문양들이 지나고 
참꽃 나눠 먹던 나이테
출렁거리는 유리벽 물속에서 
족적을 찾아 찾는  
 
* 송현 : 창녕 송현동에서 발굴된 소녀 미라.

 

3. 앙코르왓 광장에서
                                              한영채
 석상에 붉은 꽃 피었다
건기 밀림 속에
주저앉은 타프롬 성 
그들의 역사가 회색 구름으로 몰려온다

시간을 통째로 먹은 거대한 뿌리들
색 바랜 이끼들 모여
가던 길 멈추고 바윗돌에 기댄다
저 뿌리는 어디서 온 것일까
오래된 기둥에 주저앉아 햇살을 굴린다
뿌리를 뚫는 무너진 역사
카메라 샷을 수십 번 눌러대는 오늘
순간이 찍히고 있다 
 
천정이 뚫린 신비의 방엔
발을 굴러도
소리를 질러도
노래를 불러도 울리지 않는다고
가슴이 젖어야 
소리가 일어나는 공명
울음이 울림 되는
새와 우레와 벌레와 바람이 사는 곳
거대한 뿌리들의 광장에서
나의 뿌리를 더듬는다

 

4. 산 그늘이 돌아갈 무렵, 
-그, 떼 
                                                   한영채

고공 행진을 하다 그들이 돌아오는 저녁

노을에게 절창하는 새 떼들, 
대숲과 강물사이 가을과 봄이 다녀가고 
통째로 세를 놓았다고 떼 지어 
강변을 수만 평 횡단하는 세든 주인들, 
동 트거나 해질 때 
허공은 떼의 근육을 만든다. 
까악까악 사춘기 소년처럼 
허공에게 방목한 떼까마귀, 
부리를 내밀어 천개의 촛불을 물고 돌아오는 저녁, 
한 무리, 두 무리, 
무리 속에 난, 부리에게 때를 놓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떼에게 
꿈을 찾는 동안 돌림노래에 
물고기가 튀고 대숲이 들썩인다. 
숲과 강변은 와글와글 도돌이표처럼 
몰려드는 그들에겐 긴장이다 
와와 마을은 온통 우산으로 바리게이트를 치고 
새떼들의 흰 우박이 내리는 저녁,

부리를 죽지 속으로 모은 새 떼가 비밀문서처럼, 
시간의 뒤편으로 날아간다 

 

5. 푸른 잎을 엿보다    
                                                                            한영채
 귀를 열자 소리 전쟁이다 
와르르 공기 알맹이 모래톱으로 쌓인다 
가을로 가는 밤 오롯이 그와 대치 중
허리 구부려 혈맥을 찾는 
 
마당 구석 남천 이파리에 숨었다가 
긴 발목으로 물 위를 걷다가 세수 마친 여자의 종아릴 훔친다
빵빵해진 뱃가죽을 두드리는 하루
그의 하루는 벽돌에 기댄 
구월 꽃무릇 같은
 
침대 오른 남자의 얼굴을 갈기다 붉게 솟구친 북쪽 벽 
순간의 꽃 절창으로 피어나고
푸른 이파리 사이 엿보다 
거미가 엮어둔 그물에 긴 발목이 잡히기도 하는
 
어둠이 좋다 새벽이 닫기 전
긴 빨대로 목을 누른 여자의 붉은 소리가 
다섯 번의 자명종으로 울리고 
모래알처럼 소리는 왱왱 구르고
 
눈동자는 붉다

 

6. 속도의 경계 
                                                                  한영채
얼룩무늬 정지선 검은 타이어가 휙 지나간다 출근길 
이차선 밖으로 속도를 줄인 흰 소나타, 
골 깊은 평리 금계국을 여는 검은 그림자
 
곡哭소리 멈춘 하지夏至, 흰 개망초 만발한 칠월 
길가 커튼을 친 리무진, 
고요가 가득하다
 
여름이 열리고 자궁이 열리고 창이 열리고 천국 계단이 내려오고 
곡소리 올라가는 주둥이 긴 검은 리무진 간다
흰 눈썹 날리며 천국으로 간다, 간다
 
구름 같은 간곡한 그 무엇, 
사리처럼 남겼는지 
가슴이 아직도 채 열리지 않은 세계에서 난,
 
속도를 늦춘다 생의 마지막 선율이 
축제처럼 흐르는 아침
 

 

7. 드므가 사는 집
                                                           한영채
 오월 꽃그늘이
포록포록 달포 된 강아지를 재운다
처마 밑 펑퍼짐하게 눌러앉은 독, 
옹이진 가슴 불길 잡으려 
맑은 물 고집하고 있다 
돌계단을 오르자 사랑채 모퉁이 느티나무 옹이, 
오도카니 이파리에 쌓여 익숙하다 
태풍에 부러진 가지들 
고물고물 육 남매 바람 잘 날 없던 곳 
할머니 관절염 앓기 전부터 
초록은 그늘을 앉는다 
혼기 지난 시누이의 신열 같은 
골똘함이 옹이진 채 
개울물 소리 안으로 흐르는 
촉수 세운 새싹들 
할아버지 손길은 느리게 수평을 일군다 
드므 앞 앉은뱅이 나무의자가 
둥근 독 속에 비친 그의 파랑을 기억한다 
느티 아래 무순을 뽑아 
새댁 입덧 맞추느라 분주한 오후 
구름 한 자락 줄장미 담장을 걷다 
드므를 다녀간다 
오래된 물거울이 훤하다 
 
드므엔 노부부가 산다

 


8. 사과 값 치르세요

                                                                                                             한영채
골짜기 농사를 한다는 늙수레한 총각, 거친 손으로 사철 농사를 팔러 다닌다 봄부터 가을까지 제철 과일로 골목을 누빈다 겨울엔 주구장창 청송 부사만 가지고 온다 집 앞에서 확성기를 크게 틀고 누구든 기다린다 조용한 아침에 확성기 소리에 귀를 막다가 골목을 내다보는데 시간이 지나도 떠나지 않는 그가 심사가 틀렸는지 확성기를 키운다 쭈글한 부사 한 바구니 사 줘야겠구나, 요즘 들어 미인이 됐네요, (아니 이 늙은 총각이 헛것을 봤나 갑자기 미인이라니, 그 흔한 눈꼬리 성형도 안했는데) 이빨을 드러내며, 잔주름도 펴지고 근심도 펴지고 입 꼬리가 올라가고… 아니 이 늙은 총각이, (집으로 들어와 거울을 본다) 진짠가?? 그럼 그렇지 

철 지난 청송 쭈글테기 사과 값이었다
 

 

9. 거풍擧風
                                                     한영채
 수장고가 열렸다 
어느 가문에서 온 오래된 글자들 
박물관 그늘에서 숨 쉰다 
먼지를 털어 말리자 
구겨진 문장들이 내밀하게 등을 편다 
냄새는 소유권을 따라 나선다 
검은 시간의 장, 넘기다가 
고문서 앞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이월 초이레 새벽 네 시 
문풍지 울리며 떨리던 목소리, 
밭고랑 매던 누이의 필사본이 시조창으로 나오고 
골짜기를 다녀간 묵객 시가 
시냇물처럼 흐르고 
한 해 새경 장부가 모은 밀알로 심어진 점, 
점들이 모여 덧바른 두께 만큼 묵책을 만들고 
나무 기둥에 열매가 열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크나큰 풍경일 거라는 
곰방대를 문 아버지가 걸어 나오시고 
묵향 깊은 시골 장방 냄새가 
아버지의 손길처럼 들락거리는 
수장고 열리는 날 
어느 듯 박물관 뜰에 묵화처럼 걸리고,

 

 

10. 그녀가 해독하는 시간                                                                                                                                                                                                   한영채

아침을 점검 중이야수화 문자로 해독하는 그녀의 심장이층 수족관 과학 감성돔그녀는 푸른 치마를 입고 산다계절과 무관한 그런 치마그녀를 알려면 비밀번호가 필요한 거야여기가 바다인지 강인지맛도 냄새도 없는 이곳겨드랑이에 불을 켠다다물어 지지 않은 입붉은 콧등은 길을 안내하는 등대그녀의 심장은 가면처럼 견고해울려 퍼지는 아이들 소리가 가끔 들리기도 하니?꼬리를 흔들면 같은 동작이야공기방울을 보내지 않아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은 나날관심을 보이면 꼬리를 힘차게 흔들고 싶어먹잇감이 없어도 난 괜찮아파도가 없어 잠든 시간이야나무가 흔들리지 않아 미동 없는 치맛자락죽어가는 그림자는 노을이 지는 시간아가미가 붉지만 사유란 없어요물의 힘은 고요로 잠들고온도는 알 수 없는 물의 감정수평 지느러미로 막다른 사각지대와글와글 소리는 나의 희망이야언젠가 비 오는 날치맛자락을 조이며꿈꾸는 동해로 푸르게 나아 갈등푸른 물고기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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