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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 '윤이산 시인'아무렴 외 9편
복지TV청주방송 | 승인 2019.09.24 11:22
 ▲ 윤이산 시인

〔이름〕 윤이산

〔약력〕

 * 2009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 계명대학교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 중등학교 영어과 교사 지냄.

 

 

 

 

 

 

 

1. 아무렴

                                             윤이산

봄이 온다

‘아무렴’  

꽃이 진다

‘아무렴’

 

외할머니는 사시사철 바다 향해

의자를 내놓고 앉아 계셨지

온종일 ‘아무렴' '아무렴’ 중얼거리며

바다를 바라보고 계셨지

 

신열이 펄펄 끓던 밤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내 이마를 짚으며

‘아무렴' '아무렴’만 하셨지

 

몸도 마음도 너무 아파 운신조차 어려울 때

누군가 차려 내오는 따뜻한 미음처럼

당신이 건네준

‘아무렴’

 

이젠 내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봄이 오고

아무렇지도 않게 꽃이 지지

 

‘아무렴’

 

나도 바다를 향해

의자 하나 내놓았거든

 

물고기 잡으러 간 외삼촌이

자신이 던진 그물에 걸려 돌아온 바다

 

 

2. 큼지막한 호주머니

                                             윤이산

큼지막한 호주머니 달린 옷이 좋다

메모지도 넣고 돋보기도 넣고

자전거도 넣고 여행도 넣고 휘파람도 넣고

달걀 한 꾸러미 넣어두면 저들끼리 알아서

다달이 월 수익 낼 것 같은 호주머니

 

칸칸마다 용도별로 수납하면

옷 한 벌로도 한 살림 차린 것 같은

그런 호주머니 달고 걸으면

가진 것 없어도

걸음걸음 실실 콧노래 새겠다

 

구멍 난 줄 모르고 실속을 넣어뒀다

덜렁 흘려버려, 이 병신! 싶은 때 한두 번 아니지만

호주머니 없는 옷을 입고 나설 때는

여윳돈 바닥난 것 같아, 숨을 데 없는 것 같아

덜렁거리는 빈손이 안절부절 못한다

 

언 손도 텅 빈 손도

언제나 군말 없이 받아주던

내겐 최측근이었던 호주머니 

 

땅에 묻고 돌아선다

 

이젠 더 넣을 것도 꺼낼 것도 없는

아버지

 

 

3. 슬쩍, 받쳐주다

                                             윤이산

받쳐준다는 말,

만져볼 때마다 참, 단단하다

헌 자루에 척추를 박아 넣은 듯

자세가 꼿꼿해진다  

 

보호자는

심을 뺀 볼펜대에 몽당연필을 끼우듯

슬쩍,

받쳐주기만 하라고 일러주었다 

 

교통카드에 용기를 보충하고

몽당연필의 받침대가 되러가는 길

‘환승입니다’라는 멘트를 ‘환생입니다’로 바꿔들으며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로 옮겨 탄다   
 

염색체가 나보다 한 개쯤 더 많다는 그 애가

운동장을 흔들며 굴러와 내 안에 몸을 밀어 넣자

고였던 불안이 떠밀려나간다

밑돌을 괴듯    

 

몽당연필과 심心을 뺀 볼펜대의 합체   

 

길이가 조금 늘어났을 뿐인데

하늘과 땅 사이 꽉, 차는 것 같다   

 

내가 꽃대가 되어주면

그 애는 꽃을 피울 것이다

 

 

4. 밥상

                                                   윤이산

아버지는 장작으로 어머니를 때렸다

타력이 불붙을 때는

사번타자 같았다

어머니는 욕설과 비명으로 반격했지만

내 눈물에 젖어 불발탄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양쪽 사정거리 안에서 방패막이하느라

사춘기조차 놓쳐버린, 나는

양쪽 모두의 인질이었다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자신에게 날아왔던 

장작을 지펴 아침밥을 짓는 어머니

개처럼 맞고도 달아나지 않는 어머니가

아버지가 휘두르는 장작보다 훨씬 무서웠다

도무지 사람 같지 않았다

전투가 있었던 다음날에도 우리는

밥상 앞에 불려나가

둥글게 어깨 맞대고 밥을 먹었다 

 

전력이 거덜 난 아버지가

병원으로 압송되고 하루하루를

어머니의 잔소리로 연명했다

잔소리는 점차 흐느낌으로 바뀌었고

약발 떨어진 흐느낌은 아버지를 일으키지 못했다

그가 남긴 전대錢臺를 나누어가진 자식들이

하나둘 수저를 빼내가고

밥상은 점점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밥상을 괴어주던 수저들을 떠올리며  

내려앉은 밥상에 

여든 두 번째 가을을 차려 드시는 어머니

 

거 봐!

벽에 갇힌 아버지가 그녀의 생일상을 굽어보신다 

 

 

5. 간 보다

                                             윤이산

간 본다

내 간은 숨겨놓고

상대의 간을 꺼내려

간間을 노린다

여의치 않으면

내 간을 먼저 꺼내놓고

흥정을 터보기도 한다

간이 배 밖에 나온 간 큰 놈들은

상대의 복장에 바로 손을 쑥 집어넣어

간을 꺼내기도 하지만 잘못 건드렸다가

간 떨어질 뻔한 위기도 맞는다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간 맞추기

서로 간보다 입맛 맞으면  

친구 간이 되기도 하고

별 볼일 없을 때는

간에 붙으려다

쓸개에 가 붙기도 한다 

 

간 보다 피로해진 간이 

랑게르한스섬처럼 떠있다

 

 

6. 칼맛 

                                             윤이산

치켜든 칼을 내리치자

수평선이 툭, 끊어진다

 

워밍업을 끝낸 사내,

작심의 날을 벼린 칼끝에

시퍼런 물빛 긴장이 스치더니

고등어 배가 갈라지고

뼈와 껍질에서 살점이 분리된다

껍질이 벗겨졌는데도 여전히 속살에 배어있는 물결무늬

엔진과 스크루 없이도 무늬를 저어 바다를 밀고 갈 기세다

칼질이 남긴 살점 위로 한 차례 거친 발버둥이 지나고

사내의 단호한 칼날이 단숨에 몸부림을 떠낸다

 

솜씨, 귀신같아요 진짜, 꾼이신가 봐 

새콤한 찬사를 들고 누가 즉석 상차림 앞에 끼어든다

회는 무엇보다 칼맛이지요

번개 스치듯 단박에 베어줘야 합니다

그것이 산목숨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요

 

몸 안 가득 번지는 피비린내를 소주로 헹궈낸 사내가 

바다를 향해 밀린 오줌을 갈기고는

칼을 좀 더 갈아두어야겠다며 사포를 꺼낸다   

 

바다 한가운데, 흔들리는 상판 위에서

칼맛을 씹는다

 

곧 물때가 바뀔 것 같다

 

 

7. 길

                                             윤이산

죽음이간다죽음이죽음을따라간다죽음이죽음을끌고간다죽음이죽음을밀면서간다죽음이꼬리를물고간다떠밀려가던죽음이슬쩍,샛길로빠져버리자빈자리를향해엑셀레이터를밟는다간혹뒤집혀찌그러진죽음이새어나오기도한다죽음이죽음을향해서간다와이퍼로죽음을닦으며간다내비게이션의안내를받으며간다죽음끼리마주보며간다맞은편죽음이건너올까찐-한썬팅속에숨어서간다죽음에도착하기도전에갑자기죽음이벌떡,튀어나올까봐보험들고간다

 

 

8. 안개지대

                                             윤이산

비상등을 켜고

두 눈알을 길게 뽑아내고

핸들에 바짝 매달린다

 

손은 손목을 잡을 수 없고

이마는 뒤통수를 지킬 수 없고

오른 눈알은 왼 눈알을 보지 못하는

 

가장 가까운 것끼리 가장 어쩌지 못하는  

그런 길을 달려와서 

길을 잃었다

 

온몸이 혀인 안개지대는 

표지판이 없다  

 

신호등이나 횡단보도도

조향등이나 계기판도  

좌회전이든 우회전이든

유턴이든 후진이든

혀에 닿자 다 녹아버린다

 

 해가 떠오르면서 

뒤엉키고 꼬인 방향이 드러난다 

표지판이 허공을 길로 급히 수정한다

 

이정표와 핸들을 확인하고도

출발하지 못한다 

 

손목을 잘라낸 손

뒤통수를 벗어난 이마

왼 눈알을 따돌린 오른 눈알

잃어버린 길 위에서

 

불안이 브레이크를 꽉, 밟고 있다

 

 

9. 조력釣歷 

                            윤이산

파도가 일었다

파도가 갈앉고

파도가 일었다

파도가 갈앉고

파도가 일었다

파도가 갈앉고

 

일었다 갈앉는

파도가 있다가

 

석양녘엔 

바다가 되어버린

나만 있었다

 

하루 종일

갯바위에 앉아   

1.5호 목줄 끝에

나를 미끼로 던져 넣고는

내가 걸려들고 만 것이다

 

노련한 한 수,

 

오랜

조력이 있었다

 

 

10. 등 뒤

                                             윤이산

상가에 갔습니다

고인의 마지막이 참 쓸쓸했다고 내 등에 기대 우는 상주에게

쓸쓸하지 않은 마지막이 어디 있겠냐고 말 내밀고 보니

부의 봉투 두께만도 못 되는 말 부조였습니다

 

서둘러 상가를 나와

무궁화가 맥없이 지는 돌담을 지나

다리를 건너고

신호등을 건너고 무사히

생기가 붐비는 상가에서

카트 가득 먹거리를 담았습니다 

  

상주의 말이 굴러가는 바퀴에 한 번씩 제동을 걸었지만

원 플러스 원 행사에 바퀴는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수북이 쌓인 먹거리들 손질할 생각에 마음 급해져

빈소의 쓸쓸한 무게는 슬그머니

계산대 옆에 내려놓고 돌아섰습니다

  

늦은 설거지를 끝내고

종일 세워두었던 등을 내려놓을 시간, 바닥에 누우니

아까 모른 척 떼놓고 온 슬픔이 뒤를 밟은 건지

오톨, 살갗에 소름이 돋습니다

 

자꾸만 보채는 등 뒤를 떼어내

몸 바깥으로 옮겨놓고 눈을 감습니다

 

내일은 치과 예약이 잡혀 있고

토요일에는 동숙이 딸내미 결혼식에 가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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