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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 '김진수 시인'범종 외 9편
복지TV청주방송 | 승인 2019.09.17 10:16
▲ 김진수 시인

〔이름〕 김진수 

〔약력〕 

 * 2016년 계간지 <시와 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동인

 * 전망 동인

 * 강서문학 회원

 * 시집 <설 핏>, <꿈 아닌 꿈>

 * 2019 대구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시 부문 당선

 

 

 

 

1. 범종

김진수                

저보다 더 큰 입이 어디에 있으랴! 하늘로 향하면 욕심이 커질까 당초문 치맛단 아래 없는 듯 숨기고 세계를 품는다.

저물녘, 새벽에 풀어 놓았던 것을 불러드려 다시 품는다. 밤새 품은 세계가 소리가 되는

한밤중, 귀 기울이면 생황, 수공후* 소리 들리는 듯 들리지 않아 요사채 문고리는 몇 번이고 달그락거렸다.

새벽녘, 밤새 품어 숙성시킨 세계를 풀어 놓는다. 퍼져나가

 

하늘이 하늘 되고,

바람이 바람 되고,

새가 새 되어 날갯짓하는

하루.

 

귓전에 맴도는 소리 한 움큼 잡아 맛을 본다.

밤새 문밖이 자그락거리더니 저 종도 나와 같이 잠을 설쳤는지 덜 익어 떫다.

 

새벽을 밟아 달마산** 넘어가야 하는 걸음은 헉헉거리고

큰 입 아래 묻혀있는

작은 항아리 속에는 소리가 되지 못한 마음만 그득하다.

* 범종 몸체에 새겨진 비천상이 연주하는 악기

** 전남 해남군에 있는 산. 미황사가 있음

 

 

2. 단청수

                                                         김진수

천왕문 돌아드니

가림막 틈사이로 숨이 샌다

슬몃 들어다보니

희끗한 화공이 쪼그리고 앉아 윤장대에 색을 입힌다

 

붓을 든 마음

깃털 같아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린다

참았던 숨 토하니

학이 엄지손톱보다 작은 하늘을 난다

서까래 마구리엔 꽃이 피고

다포 맨 상단에

한 자 한 자 써 넣은 범어가 물길을 낸다

 

안경 밀어올리고 물감을 찍어 붓 고르니

 

손톱 밑에 끼인 물감을 씻어내듯

업, 씻고 씻어

어두워지지 않은 눈

떨리지 않는 손

그 은혜아래

공 드린 세월과 믿는 마음이라

 

다잡은 붓끝에서 벙그는 연화문살

오방색 잎잎이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경을 새긴다

 

나는 오래 숨을 참았다

 

 

3. 찔레꽃

                              김진수

빈 젖에서

엷은 찔레꽃 냄새가 난다

 

누이의 배냇저고리 같은

 

감자 꽃 피기 전에는

딸네 집에도 가지 말라는

오월에

숫적게 피어 눈물 자아올리는

 

안개에 한 쪽 가슴 뜯어 먹힌

밭두렁에 퍼질고 앉아

가슴에 묻은

달, 차오르도록 넋 놓아 우는

 

어미, 고름 풀린 무명저고리

앞섶 헤치고

얼핏 드러나 보이는

젖꼭지, 영실보다 검붉은

 

바람에 쓸려 아장거리는

순백의 꽃잎

빈 젖 덥석 문다

빨아도

빨아도

허기 매울 수 없어 누렇게, 누렇게 숨 잦아드는

 

저! 가슴 꼴 꽃잎

 

 

4. 단풍놀이

                                                         김진수

1

어머니 가시던 날

산(山) 발치까지 물들인 단풍은 어찌 그리 붉고 곱던지

 

병상에 누워서도

올 단풍 곱다는 소리 어떻게 들었는지

 

사는 게 팍팍해

단풍 구경 한 번 못하고 사는 새끼들

2박 3일 단풍놀이 다녀가라고

날 잡아 한꺼번에 불러 모았다

 

성정대로

삼베 치마폭 당겨 묶으시고

휑하니 앞서가는 당신

 

행여 놓칠세라

종종거리며 따라가는 4 남매와 그 식솔들

 

새끼들 흘린 눈물 털고 가는 발길

아침 햇살 불러 모아

절로 붉어지는

 

2

오색의 단풍이 곱다던데

상원사 가는 길 단풍이 예쁘다더라

건성, 그냥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다

고뱅이가 아파 마실도 못 가신다더니

망백의 노인네 걸음이 어찌 저리도 빠르누

 

3

산마루 단풍이 발치까지 달려 내려오는

영랑호에 머리 감은 재두루미

물기를 터는

그 새벽

바짝 졸아든 몸 벗어놓고,

뭐가 그리 급한지

며칠만 더 있다 가라는 당부는

들은 둥 마는 둥

그새 못 참고 가셨다

사그락

사그락

삼베 치맛자락

끌리는

 

 

5. 청춘

- 달밤*

김진수       

그제, 내가 본 당나귀는 흰 부리망을 쓰고 활짝 핀 장미를 지고 있었다. 흰 부리망 속에 쫑알거리는 입술과 코, 장미보다 붉은 잇몸, 노란 장미 꽃잎 허기진 이빨을 감춘. 그렁한 눈망울, 그 긴 속눈썹 사이로 뜬 초승달이 전하는 말, 아무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다, 붉게, 붉게 덧칠된 속내마저 덮어지고, 꽃을 지고 온 날 밤은 어김없이 신열을 앓았다. 살갗에 가시가 돋았다. 가시는 자라 심장을 꿰뚫었다. 피 흘리는, 끝내 오지 않는 새벽, 머리에 꽂은 꽃이 뛴다. 꽃 한 송이 물고 다시 일어난 당나귀가 뛴다. 흰 이빨 드러내는 꽃샘추위, 눈 비비는, 막 벙그는 꽃잎에 소금을 뿌려도 봄은 봄이다. 이렇게, 이토록 눈부신

* 사석원의 캔버스 유채(80.3 x 116.8)

 

6. 스테인드글라스

김진수      

꿈을 꾼다 길 잃은 꿈과 꿈 사이에 꿈이 끼어든다 꿈과 꿈 사이에 꿈을 밀어 넣는다 꿈은 일회용 콩트라 커튼콜이 없다 어느 꿈, 푸른 아침이 되었다 까만 밤이 된다 붉은 저녁은 가까운 듯 아득하다 손 뻗으면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꿈으로 꿈을 메꾼다 잠을 얽어맨다 꿈속엔 그녀만 있고 나는 없다 그녀가 나를 끌어안는다 그녀가 나를 밀어낸다 그녀는 얇은 유리 조각, 손끝만 닿아도 산산조각 날 것 같아 하늘을 깨뜨렸다 날 선 서슬로 꿈을 잘라낸다 그녀가 찢어진다 하늘이 찢어진다 틈새로 비명이 샌다 잘린 꿈이 또 끼어든다 꿈은 조각난 그녀를 끈질기게 붙들고 있다

 

 

7. 초상화

- 윤두서의 자화상*

                                        김진수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의 두 귀는

귀 없다고 세상마저 없지는 않을 터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마주 쳐다볼 수 없는

태백준령이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입니다

끝내 넘을 수 없는,

 

바람이어라 강물이어라 그 아래 굽이굽이 휘어드는 외줄로 뻗어 내린 산줄기, 고집불통 촛불이 탄다 우레도 꽁무니 빼는, 터져 나올 것 같은 사자후, 하늘을 베어 물어 꽉 다문 입술 비집고 ‘이게 나야’ 눈빛 그 너머 오늘을 아우르는 삼백 년 한결같아 끝을 세운 터럭마저 예사롭지 않은, 부릅뜬 눈에 옹골찬

 

저 눈빛 너머

죽순이 허공을 뚫고

어우러지는 해금과 대금이

우려내는 국화차 한 잔

그윽한 난향 한 촉, 하늘을 웃게 하는

 

설중매 한 점 꽃눈 틔우는

가위는 나를 토막 내고

오금은 멍해지고 낡은 주머니 속 떠돌던 초상

내게로 와 겹쳐진,

바늘이 되어 찔러대는 터럭이 자란다

떠다니다 다시 고요가 되는,

유리 벽 뚫고 나온

놀란 눈은 벽을 허물지 못하고

 

새벽, 홰치는 소리 멀고 촛불은 버린 농마저 태우는데

찾으셨나요?

버리셨던 귀, 두 쪽은

* 공재 윤두서 20.5X38.5 국보 제240호

 

 

8. 탄생

                                                                               김진수

가로등 불빛이 얼어붙습니다. 피 묻은 손이 엎어지고, 눈 감았던 햇살이 비수로 꽂히는 밤. 젖몸살 앓던 꽃받침은 떨어지고 첫울음 운 아이, 닫힌 대문 두드립니다. 젖이 되지 못한 울음이 유리 벽을 긁고

 

누군가를 향해 한번 웃어 보지도 못한

 

꽃.

비닐봉지 안에 꽃등 하나 밝힙니다.

 

수은주가 한 걸음씩 뒷걸음칠 때마다

꽃 빛이

 

배냇짓 하는 입술에 미농지 같은 숨으로 매달립니다.

숨은 사위고 꽃대 하나 뽑아 올리는

여명이 달려옵니다.

 

붉게 피어나는

 

햇덩이.

 

흠도 티도 없는.

 

 

9. 목 백일홍

                                        김진수

불 들어갑니다

 

다 벗어주고

다비의 불꽃으로 타올라

하얗게 뼈만 남은

 

죄 많은 허울이어라

 

백날 붉은 것은

버리지 못한 자기연민이라

아침나절, 마른천둥으로 뱉어낸 마지막 고백

천상에 들어

 

밤하늘

빛나는 저 사리들

백 일 동안 불꽃으로 타

쪽빛으로 번지는 넋,

 

빛으로 나려 닿는 곳마다

 

새날이다 움트고 꽃피는

 

 

10. 어머니의 강

                                        김진수

다 왔어!

물소리 잦아들고 갯냄새가 물씬 한 걸 보니

참 길고 오랜 여정이었어

근 백년, 이젠 멈출 때도 되었지

또렷하던 굽이굽이가 희미해지네

어찌 흐르기만 했겠나

하늘이 쥐락펴락하는 날씨도 어디 한결 같던가?

비 오는 날 있으면 볕 좋은 날도 있듯이

내 강도 그러하였지

폭포처럼 아우성치던,

소(沼)에 모여 수다 떨며 깔깔 거리던

그 웃음, 가슴 밭에 심었지

때 되니 싹트고 꽃 피더만

저승꽃, 그거 그리 슬픈 것만은 아냐

나름 행복이기도 했지

가슴 치던 날, 마저 삭히지 못한 그 화 가슴 곳간에 쟁여뒀지

몇 날 안 본 새 주름살 하나 둘 그렇게 느는,

다 왔는 건지 아님 쉬었다 가라는 것인지

물살이 여려지고 물결이 되물린다

하긴 급할 것도 없지

몇 며칠, 왜가리 하고 데이트도 하고,

가창오리 군무도 보고,

갈대시인의 시낭송도 듣고,

잉어랑 용궁구경도 가고, 그러다

하구언 수문 열리는 날

가는 거여!

없는 듯 묻어서 가는 거여!

저 너머, 큰물이 되는 거지

바다로 가 고래랑 놀 거여

이보게! 나, 가네

어머니가 눕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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