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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 '김나비 시인'히키코모리 외 9편
복지TV청주방송 | 승인 2019.09.10 10:00

〔이름〕 김나비

 ▲ 김나비 시인

〔약력〕

 * 청주 출생

 * 2017년 한국NGO신문 신춘문예(시)

 * 201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시조)

 * 수필집『내 오랜 그녀』『시간이 멈춘 그곳』

 

 

 

 

 

1. 히키코모리* 

                                                   김나비

껍질을 벗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

나는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의 경계에 산다

오늘은 11번째 나를 버리는 비명의 종착점

단단하게 벗겨지는 또 다른 나를 본다

암전된 소리 틈에서 돋아나는 검은 비명을

몸속에 구겨 넣으며 시간을 갉아먹는다

 

컴퓨터와 텔레비전 속은

어둡고 따듯해 내가 살기에 딱 좋은 곳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말없이도 말을 할 수 있는 건 내가 꿈꾸는 세상

내 영혼을 각진 블랙홀 속에 묻는다

나를 흡입하는 어둠 속 환한 세상에서

종일 빛을 끄고 그들과 시간을 분할한다

 

사람들은 왜 같은 발자국만을 찍으려고 할까

내게 달콤한 음식을 내놓는다

세상을 맛보려 더듬이를 내밀 때마다

온몸을 찌르는 차가운 빛의 칼날들

칼을 던지는 사람들의 발소리에 구석으로 몸을 숨긴다

한 걸음 물러서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어둔 세상을 더듬는 깊은 침묵

나는 작은 바퀴벌레다

*은둔형 외톨이

 

 

2. 디스토피아

                                                   김나비

오늘 새벽 3시 30분

네가 내 가슴에서 이륙했다

탑승했냐는 문자에 차갑게 대답을 얼리고

잘 가라는 톡에 입술을 봉합한 채

 

이제 내겐 전쟁이 없겠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고 했던가

장미가 얼굴에 핏발을 세워가며 담을 넘던 유월

내게 배달된 초콜릿 상자

울퉁불퉁 만들다 만 새까맣고 거친 알맹이

어느 것을 집어 들어도 칼날이었다

 

오븐에서 익어가는 빵처럼 천천히 부풀던

처키처럼 웃으며 내 심장을 찌르던

시멘트 담장 모서리를 급히 돌다 쓸린 팔뚝 같은

내 허공에 하얀 절망의 비행운을 그려준 너

 

오늘 새벽 5시 57분

보잉B777 한대를 격추시켰다

감은 눈두덩 안에서 이리저리 굴러가는 눈동자

그 속에 네가 묻어둔 물관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농담처럼 떠올린다

 

어미 개의 몸에 붙은 죽은 새끼 냄새 같은

너의 얼굴을 툭툭 닦아낸다

뾰족한 기억이 침대 위로 떨어진다

*영화 포레스트검프에서 인용

**랭보의 시 제목

 

 

3. 시간의 프랙탈

                                                   김나비

두고 온 성대를 찾고 있을까

교정에 마른 목소리만 소복이 쌓이고

휑한 눈빛은 먼 산을 뒤적인다

얼마나 말을 삼켜야 말을 할 수 있을까

 

벌어진 입속엔 칸나 빛 혀가 피어있고

꽃잎 양옆 덧니는 설익은 밥알처럼 뾰족하다

꼬리는 깨져서 철골이 드러나고

금이 간 지 오래인 듯 까만 먼지 낀 등줄기 아래

으스러진 꼬리가 아슬히 그네 타는 호랑이 동상

 

떠나온 산을 향해 눈빛을 던지며

고인 말을 몸에 말아 넣는 호랑이를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까만 피부의 남자 크리티안

먹이를 찾아 소리를 지운 채 붙박이가 된 시간을 보며

필리핀에 두고 온 아이를 떠올린다

 

파종된 시간 속 일 년이 피고 다시 하루가 열리고

시간의 프랙탈 속에서 목 안에 흐르는 말을 또 얼린다

박제된 말들이 밥알처럼 그득하다.

 

 

4. 그리고 내가 있었다*

                                                   김나비

그녀가 없는 손으로 목을 조인다

창가의 포인세티아가 빨간 비명을 지른다

콘센트에서 피기 시작한 꽃들은

새를 쫓는 바람 인형처럼 춤을 추고

방안은 뿌연 음악이 깔린다

그녀의 투명한 손가락이 점점 힘을 더해간다

 

소금 뿌려진 미꾸라지처럼 몸을 뒤틀며 뒹구는

남자의 몸 위로 여자가 기어 올라온다

그녀는 온몸의 살을 풀어 구멍을 찾는다

눈을 핥고 콧속을 핥고 온몸을 핥는다

몸통을 샅샅이 애무한 그녀는

홑이불처럼 남자를 덮는다

 

손가락이 감나무 가지 위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가늘게 떨리고

몸은 젖은 빨래처럼 늘어진다

여자는 한동안 굳어가는 남자의 주변을 서성이다

창문 틈으로 스스르 빠져나가 버린다

머리카락 하나 떨어뜨리지 않았다

 

까맣게 타버린 방안

나는 벽에 둥글게 걸린 채 그을린 남자를 품고 있다.

남자의 누운 몸이 밤새

반짝이는 내 얼굴에 수묵화를 찍는다

 

아무도 내게 물어오지 않는다

*And Then There Were None(1945) 범죄/미스테리/에서 착상

 

 

5. 히치하이킹

                                                   김나비

그녀가 담을 넘고 있다

긁힌 얼굴은 피로 가득하다

햇살이 부신 창을 던져 허리를 찔러도

빗줄기가 축축한 손으로 머리채를 휘감아도

허공을 온몸으로 들어 올리며

입술을 깨문 채 넘고 있다

어디선가 Donde Voy가 흘러나온다

 

지나던 바람이 등을 내밀자

바람을 타고 길로 나서는 그녀

붉은 몸을 펼쳐 단 한 번 날갯짓으로

추락을 가장한 비상을 한다

몸이 퍼즐 조각처럼 바닥에 흩어진다

그녀를 태운 발소리들이 사사베*를 향해 멀어진다

 

담장엔 소문이 무성하게 가시를 세우고

떠나지 못한 장미들의 모의가 몽글몽글 피어난다

그녀는 지금쯤 누군가의 신발에 묻어

자정의 국경을 건너고 있겠다

*멕시코 소노라 주 사사베에 미국으로 입국하려는 멕시코 난민들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한 거대한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이 있다.

 

 

6.  스토커

                                                   김나비

누가 그녀의 발에 내 몸을 심었을까

뿌리가 같다는 건 함께한 기억이 많다는 것

나는 매일 그녀의 몸에서 소리 없이 자란다

검은 옷을 입고 숨을 말리며

출근길에 따라붙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돌아도 제 자리를 맴도는 행성처럼

그녀의 주변을 도는 건 나의 운명일까

밝은 곳에서는 들키기 쉬워

정오엔 햇살로 나를 졸여 압축시킨다

 

저녁엔 몸을 키워도 좋다

몸을 불리는 건 위험한 도시에서

그녀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골목을 돌아 그녀가 집에 들어서면

그녀보다 먼저 침대에 눕는다

그녀가 내 위에 몸을 겹치고 이불을 당길 때

안도의 숨이 바삭하게 품어 나온다

산듯하게 건조된 하루를 덥고 누운 나는

 

그녀의 숨소리만으로도 행복한 그림자

 

 

7. 물의 거짓말

                                                   김나비

머리칼이 아다지오 보폭으로 피어나고 있었던 거다

하얗게 자라는 머리칼은

강이 밀어 올린 희미한 핏줄

머리칼은 강의 몸속 깊은 곳에서 올라온 것

온몸에서 돌던 하얀 피가

머리칼의 몸의 빌려 세상에 뿌려진 것이다

머리칼이 자라는 것을 보기 위해 모여든

새벽의 게슴츠레한 눈에도 피는 뿌옇게 차오른다

 

더 이상 가벼울 수 없을 때

담쟁이처럼 발을 뻗어 도시로 날아가는

화려한 물의 거짓말

도시를 가득 점령한 머리칼이 도로를 닦으며 걷는다

도로 위 폐지 줍는 노인의 리어카 바퀴를 머리칼로 지우며 새벽을 이끈다

하체가 머리칼에 친친 감긴 가로등은 거슴츠레한 눈빛으로

지워지는 노인을 바라본다

강이 머리를 움켜쥘 때마다

울컥이며 세상으로 수혈되는 안개

 

하얀 머리칼이 떠다닌다

 

 

8. 꿈에 베이다

                                                   김나비

새벽이 몸을 뒤척이는 동안

꿈 한복판에서 잠시 스쳤던가 우리는

 

찰진 잠에 빠진 아이의 입속에서

아빠라는 검은 목소리가 굴러떨어진다

네온사인 불빛이 눈을 껌뻑인다

나는 땀에 젖은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준다

모로 눕는 아이의 베게 밑에 꿈이 한 조각을 떨어진다

막 낳은 계란처럼 따듯한 꿈을 주워 살며시 펴 본다

 

바람의 잔등을 타고 있는 롤러코스터 위에

아이는 풍선을 손에 쥔 채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있다

그 옆 선글라스를 쓰고 파도처럼 출렁이는 당신

터지는 즐거운 비명에 하늘이 깨질 듯 파랗다

놀이기구 아래서 당신을 보며 얼음이 되었던가 나는

먼 우주에서 온 사람처럼 나를 알지 못했던가 당신은

그렇게 스치고 있었던가 우리는

 

비명 섞인 웃음이 멈추고

사람들이 들깨처럼 이리저리 흩어질 때

등만 보이며 내게서 멀어졌던가 당신은

 

익숙한 둥근 등, 당신의 등 위로 저녁이 번지고 있었던가

내 눈에 모세혈관이 노을처럼 붉어졌던가

잘린 종잇장 같은 얼굴로 멍한 눈빛을 털며

황급히 아이의 꿈속을 빠져나왔던가 나는

 

매일 햇볕에 말려도 습습하게 젖어 드는 당신

아이의 꿈을 빌려 한참을 서성이다 갔던가 당신은

잘리지 않는 낚싯줄 같은 기억을 자른다

 

 

9. 빗물 얼음

                                                   김나비

비 오는 날이면 빗물 얼음을 꺼내문다

기억의 냉동고에 아직도 싱싱하게 얼어있는

그날의 빗소리

그곳엔 짓무르지 않는 시간들이 보관된다

 

떨어지는 빗물을 모아 냉동고에 넣는다

냉동고 안쪽에서

빗소리가 제 몸을 얼려가고

작은 네모로 쪼개져 이야기를 분할 저장 한다

사각으로 굳어가는 비의 소리

 

비 오는 날이면 나는 냉동고를 살핀다

얼음 조각 하나를 꺼내 문다

목구멍을 토닥이는 얼음 조각 사이로

시린 당신이 새어 나온다

 

당신이 살아냈을 나날들

고추씨처럼 당신의 몸에 붙어 여물어 가던 8남매

빚쟁이들이 들이닥친 날

마당에 요란하게 춤추던 세간들

감자알 흩뿌려지며 땅에 부딪힌 노란 양푼의 비명

당신은 아이를 업은 채 식은 감자 덩이 물에 젖을까

빗속에서 지네의 발 되어 바둥거리고

등에 매달린 아이의 울음 허겁지겁 삼키던 빗소리

 

바람은 흐트러진 당신의 다리를 핥고

휑한 눈길로 빗소리만 담던 당신

비 오는 날이면 난 빗물 얼음을 꺼내 문다

시들지 않는 빗소리를 깨문다

 

 

10. 만약

                                                   김나비

내가 실이라면

온몸을 다 풀어내겠네

둥글게 말려있는 살들을 풀어

너와 함께 걷던 후미진 길에 펼쳐놓겠네

어두운 골목을 구석구석 누비며

너의 흔적들을 찾아내겠네

 

꽃잎처럼 떨어지는 가로등 불빛 아래

아슴하게 흔들리는 그림자를 감고

상처를 핥고 있는 고양이의 눈빛에 잠겨

젖은 벽의 물기를 닦으며 어둠의 입자와 뒹굴다

기웃거리는 살구나무 가지를 휘휘 돌아

전봇대 끝 쪼개진 반달을 하얗게 꿰매겠네

 

어둠을 지워가며 어둠이 되는 어두운 골목

얼마나 더 골목을 돌아야 골목을 나올 수 있을까

 

돌아오는 길

펼쳐놓은 내 살들을 한 올 한 올 말겠네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게으른 바람 소리를 말고

흔들리는 오동나무 가지에 흐르는 별빛을 들으며

꼬리를 치켜 컹컹 짖어대는 슈나우저 목소리를 당겨

골목을 단단하게 감겠네

 

그리고

먼지 가득 품은 찌든 실로 돌아와

시간이 모두 빠져나간 곰팡이 핀 둥근 빵처럼

차디찬 방구석에 소리 없이 돌돌 늙어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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