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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 '황연옥 시인'아버지의 초상 외 9편
복지TV청주방송 | 승인 2019.08.27 09:53

〔이름〕 황연옥

 ▲ 황연옥시인

〔약력〕

 * 시인, 아동문학가

 * 강원 고성출생

 * 춘천교육대학, 숙명여대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졸업

 * 1973년 강원 속초교동초 ~2012년 부천계남초에서 퇴임

 * 등단

시: 1990년 , 문학공간, <새벽 하늘>

동화: 2000년, 아동문예, <줄강낭콩과 상모돌리는 아이>

 * 저서

시집 : 『햇살의 나라』, 『자산에 강을 열며』, 『아버지의 손』, 『시인의 단추』,

시선집 : 『흩어진 나그네의 꿈』,

수필집:『아름다운 날 좋은 사람과 함께』

창작동화집:『땅꼬마 민들레』

동시집:『감자 속에는 푸른 풀밭이 있나 봐』

 * 부천교사문학회 초대회장, 부천여성문학회 회장, 강원고성문학회 회장 역임

 * 현, 한국문협 강원지부 이사

 

 

 

1. 아버지의 초상

                                        황연옥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논두렁을 걸어오신다

새벽이슬이

삼베바지 가랑이를 다 적셨다

 

서쪽 하늘에서

여린 빛을 내고 있는 그믐달

새벽하늘은 언제나

아버지의 그림자를 지웠다

 

내가 철이 들고서야

우리들이 먹은 밥이

아버지의 이슬이란 것을 알았다

 

 

2. 오래 된 숫돌

                                        황연옥

아침식사 준비를 하다가

무뎌진 칼을

아버지가 쓰시던 숫돌에 갈았다

쓱싹, 사각사각,

숫돌에서 들려오는 그 오묘한 소리

 

닳고 닳아 살짝 건드려도

바스러질 것만 같은 야윈 숫돌

 

무딘 칼에 날이 섰다

 

아버지는 사계절

이 숫돌에 고단한 삶을 갈아

들녘에 푸른 꿈을 펼치셨다

 

아버지가 펼쳐놓으신 꿈길 아래

가을이면 볏단이 쌓이고

곳간이 가득 채워졌다

 

수 십 년이 지난 오늘

그 예전 아버지의 꿈을

하나하나 펼쳐가며

바스러질 것 같은 오래된 숫돌에

나도 꿈을 간다

 

 

3. 계절이 지나가는 해변

                                        황연옥

계절이 지나가는 해변은

적막함으로 가득하다

 

파도는 몸을 뒤척이며

하얀 입김을 내 뿜으며 달려오고

한 계절을 힘겹게 보낸 나도

앙금으로 남은 마음 주체하지 못해

밤새도록 몸을 뒤척였다

 

조용해진 백사장

흘러 내려온 강물이

바닷물과 만나는 지점에서

하늘엔 또 하나 별이 뜨고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는 바다는

아픔의 그림자까지 끌어안을

결 무늬를 만들며

하늘과 바다가 한 몸이 되어

전설 같은 한 계절을 이야기 한다

 

 

4. 새가 돌아 왔다

                                        황연옥

봄이 오고 적막하던 뒷산에

새가 돌아왔다

이른 새벽 새들은

그들의 언어로 소식을 전한다

 

삶이 즐거워 노래하듯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듯

억울하고 슬픈 사연을 호소하듯

 

새들이 말할 때 꽃 한 송이 핀다

새들이 노래할 때 별 하나 뜬다

 

들녘에 꽃밭이 생기고

하늘엔 별자리가 뜬다

 

새가 돌아온 자리마다

빛나는 날개 가득하다

 

 

5. 가을, 화암사 가는 길

                                        황연옥

설악의 준령

울울창창 골 깊은 계곡

물소리 청아하다

 

구름은 능선 위에

은빛으로 걸려 있고

붉게 물든 단풍은

바람결에 온몸을 뒤척인다

 

오름길 갓길

돌에 새겨진 선방의 싯귀에

옷자락 여며지고

 

금강산에서 길 재촉하며

내려오던 단풍은

수 바위에 걸려

바다로 내려갔다

 

 

6. 거진항에서

                                        황연옥

꽃등을 달고 출항하는

오징어잡이 배들이

아득한 밤바다를 열고 나가면

꽃등의 환희가 바다에 출렁인다

 

철조망 사이로 바라보이는 북녘 바다

시름 담은 이산가족 노인의 눈동자

점점 희미해지는데

 

바다는 삭이지 못한 그리움을

하얀 물거품으로

백사장에 쏟아 놓는다

 

“예전만 같아라!”

“예전 반만큼이라도 잡히거라!”

이중창을 부르며 배웅하는 갈매기

 

멀어져 가는 집어등을 바라보며

만선의 깃발 흔들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노인의 얼굴에

발그랗게 꽃등이 켜진다

 

 

7. 휴게소 수유실

                                        황연옥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늑한 방을 만났다

비어 있어 살며시 들어가 보니

꽃냄새 가득하다

아늑한 쇼파와 커텐

아기 침대, 전자렌지,

몇 권의 책과 잔잔한 음악,

흠잡을 데 없는 편안한 수유실이다

 

어렵게 살던 70년대

첫 아이를 낳고 한 달 만에 출근하며

불은 젖의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재래식 화장실에 젖을 짜 버리던

어두운 기억이 살아 오른다

 

세월은 푸른 물살로 흐르고

아기와 엄마가 이렇게 편하게

여행을 할 수도 있는데

수유실은 비어 있다

한참 있어도 인기척이 없다

 

살며시 방을 나오는데

배부른 임산부가

사슴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8. 포구에서

                                        황연옥

포구에 어스름이 밀려온다

바다는 파도로 눈물을 만들고

파도는 바람을 일으켜 풀잎을 눕힌다

 

아침에 떠나간 고단한 생각들이

노을빛을 안고

바람 따라 돌아오면

 

등 굽은 늙은 어부

어둠 깊어진 포구에서

그물과 집어등을 준비한다

 

낡은 어선엔

다시 불이 켜지고

저녁 별들이

밤바다로 나가는 어부를 배웅한다

 

 

9. 오동나무

                                        황연옥

딸을 넷이나 낳은 어머니는

딸들 시집보낼 때

장농을 만들어 주려고

밭둑에 오동나무를 심으셨단다

 

두 딸들은 꽃잎이 떨어지듯

어린 나이에 하늘나라로 가고

무심한 세월도

오동나무 꽃술에 앉았다가

서럽게 지나갔다

 

수 십 년 동안

오동나무는 나이테를 감아가며

허리 살을 키웠는데

목수 하나 부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

 

달밤이면 오동나무가

바람을 불러 연주회를 한다

 

우~우~

구슬픈 노랫가락에도

가지는 요동도 하지 않고

나무는 여전히

어머니 마음처럼 웅숭깊다

 

 

10. 아름다운 뒤태

                                        황연옥

어느 어르신의 장례식장에서

문상객들이 고인의 삶을 추모하며

“참 잘 살고 가셨다”고 한다

 

삶도 죽음도

모두 아름답길 원하지만

그 숙제를 풀어가는 일

쉽지 않은데

 

풀꽃처럼 자신의 계절을

소박하게 살다가

본향으로 돌아가는 모습

 

들풀처럼

욕심 없이 살다 간

그 아름다운 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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