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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 '김정범 시인'북극여우에게 외 9편
복지TV청주방송 | 승인 2019.08.13 09:39
 ▲ 김정범시인

〔이름〕 김정범

〔약력〕

 * 충북 청주 출생

 * 2019년 한국NGO신문 신춘문예 당선

 * 우리詩, 풍향계, 활시 동인

 * carlsolomon2010@hanmail.net

 

 

 

 

 

1. 북극여우에게

                                                   김정범

너의 흰 털이 햇빛처럼 방 안에 부서져 내리고 있어

어제 유리창이 흑백사진을 보내왔어

툰드라가 붉은 흙에 파묻히고

잎새 잃은 나무가 뼈다귀로 서 있는 사진

마치 너의 최후인 양, 섬뜩했어

강의 흐름이 빨라지고 있어

이끼는 점점 커지고 눈은 쌓이지 않고 녹고 있어

바다는 파도를 밀며 방파제를 넘어뜨리고

천둥은 기계의 도시에 폭우를 때리며 메아리치지만,

모두 편리함에 젖어 기름을 태우고 있어

너를 노리는 사냥꾼이

평범한 내 이웃이라는 사실이 매우 고통스러워

네가 안전하지 않으면 나도 안전하지 않아*

이미 절름발이가 된 너의 다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눈꽃의 중심에 있는 육각형처럼

너의 서식지에 박혀 있는 지구의 눈동자가 보여

작은 것들이 떠가는 게 보여

바람에 묻어온 수증기 몇 톨이

내 심부로 들어와서 힘겹게 발전發電을 하고 있어

빙하를 만드는 데 필요할 거야

별을 향해 짖고 있는 네 모습을 보고 싶어

지금 멀고 희미한 등불 아래서

이누이트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어**

너의 마을에 싸라기눈이 흩날리며

내 방에 하얗게 빛나는 침묵의 언어를 뿌리고 있어

 

* 알렌 긴즈버그의 울부짖음에서 빌림

** 이누이트 : 북극 지역에 사는 원주민

 

 

2. 즐거운 사과나무 집

                                                   김정범

흰 소금이 뿌려진 하늘에서는 소독약 냄새가 풍긴다

갯벌은 바다를 더 멀리 밀어내고,

여자는 페트병처럼 누워 있다

포도당을 맞은 꽃다발이 싱싱하게 떠든다

즐거운 남자는 버튼을 눌러 침대를 일으켜 세운다

저녁 드셨수, 난 오늘 생각이 없네

사과 따러 가야지, 오늘 팔아야 하잖아

그녀는 힘없이 웃는다

사과나무가 어디 있는데요

저 갯벌에 있잖아, 두 그루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든 사각형 서류를 흔든다

이분 누군지 아시겠어요

누구긴 누구야, 내 영감이지

그럼 나는 누굴까요

그는 점잖게 고개를 갸웃거린다

......거긴, 내 신랑이지

뜨락의 봉숭아 꽃잎이 바스러진다

그는 하하 웃으며 손가락으로 서명란을 가리킨다

창백한 남자가 어깨를 떨며 이름을 적는다

푸른 해초가 사라진 검은 갯벌

그녀의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진다

잔금이 수천 개 그어진 빨간 생애의 꿈

휠체어를 탄 꽃이 유리창 위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고

낯선 평화가 즐거운 사과나무 집을 휘감는다

 

 

3. 가시엉겅퀴꽃

                                                   김정범

물가 숲에서

햇빛을 삼키고 있는 엉겅퀴꽃을 만났다

퍼렇게 멍든 몸에 가시가 많아

나는 꽃에 찔린다

이 많은 가시는 언제 돋았을까

톱니 달린 잎새가 쇠 날에 잘릴 때마다

하나둘씩 깨어났을까

줄기가 높게 자라나던 동안

참아 삭히던 절망과 슬픔,

쓰디쓴 결기와 사랑

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날아드는 벌레와 싸웠으리라

은밀한 어둠을 따라 내려오던

짐승의 거친 살결을 가시로 찔렀으리라

나의 손끝이 가시에 닿는다

내밀히 진동하는,

까마득히 깊은 뿌리의 통증

자줏빛 꽃잎은 시간에 말라가지만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고독의 힘에,

가시는 더욱 단단해지고 굵어진다

지금 내 몸에 돋아나는

꽃의 가시가 부러질까 봐, 나는 두렵다

 

 

4. 정중동靜中動

                                                   김정범

모과꽃 핀 나무에 검은 고양이가 올라가 있다

분홍 잎이 빈 뜨락으로 떨어진다

움직임을 가장 빨리 감지하는 조용한 동물,

고양이가 사뿐히 나무에서 내려온다

살며시 가지를 옮겨 앉는 새

발톱에 묻은 어제의 피는 아직 씻지 않았다

햇빛은 서서히 숲을 빠져나가고

투명한 연둣빛 어둠이 기어나온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여기는 분명 내 영역이 아니다

나비의 애벌레처럼 꿈틀대는 고요

꺼지는 공간 속으로 고양이가 발톱을 세우며 들어간다

모과꽃이 한 줌의 고독을 뿌린다

고양이는 힐끗 뒤를 쳐다보고,

등에 떨어지는 물고기를

휘이, 발톱으로 그어 덥석 물어 씹는다

소리 없이 흩어지는 웃음

발톱에 묻어있던 허기가 꽃가루로 떨어지고

모과꽃이 슬쩍, 분홍빛 이파리를 뒤집는다

 

 

5. 트라우마

                                                   김정범

밤새 비가 내렸다

빨간 꽃을 신은 여자가

푸른 잎사귀를 떨어뜨리며 지나간다

아이들은 새 공을 들고 학교로 가고

말쑥한 남자는 출근을 하기 위해

차의 시동을 건다

물기 젖은 나무에 달라붙은 이끼가

빠르게 번지고 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기억의 숫자를 세어본다

황무지*의 첫 구절이

푸릇한 잔디 위에 스며들고 있다

조용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침묵한 것들이 소리 없이 빨간 꽃으로 피는

그런 날일 것이다

꿀벌 한 마리가 윙윙대며 날아오고

하얀 철쭉이 환하게 웨딩드레스를 갈아입는다

사월의 봄날, 베란다의 사랑초가

햇빛을 받으며 날개를 활짝 펼친다

 

*T.S 엘리엇의 시

 

 

6. 물의 조각彫刻

                                                   김정범

자맥질하던 돌방죽 물결 속에서

부레옥잠 꽃잎을 보았지

푸른 잎맥에 햇빛이 비치고

은색 물고기가 그늘 밑으로 숨어들었지

 

물빛의 고요함,

내가 잡고 싶은 신비로운 세계가 거기에 있었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수면 위로 퍼지고

부끄럽게도 몸은 깊숙이 가라앉았지

손을 흔들며 떠가는 꽃잎을 잡으려 했지만

닿지 않는 작은 팔이 너무 슬펐지

 

깨어났어, 내가 살렸어

둑방의 달개비꽃들이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어느 찰나인가, 공기처럼 사라진 물의 조각

 

검은 아스팔트 위 하늘에서는 낯선 구름이 날아가고

시간의 나무 위에서 물 이파리 하나 조용히 떨어졌지

중력의 파동이 두 개의 시간 사이에서

파르르 떨고 있었지

 

 

7. 연둣빛 날개, 지붕 위로

                                                   김정범

베란다에서 연둣빛이 움직이고 있다

햇빛의 엽록소를 마시며 날개가 반짝거린다

만데빌라*의 붉은 관악기 음색을 사랑했지만

이제는 부서지고 녹이 슬었다

나는 껍질 두꺼운 세상과

암호처럼 감겨오던,

고립된 섬의 파도를 네게 이야기한다

마법의 물방울이 떨어진 생의 질감,

네 근육의 신경세포는 끈질기게 지붕 위로 몸을 뻗는다

얼마나 꿈꾸었을까

밟히며 바닥을 기어가다가

줄기 어디선가 뿌리를 내는 생존의 기억술,

잎새를 뒤집어 햇빛을 향하는 가벼운 왈츠의 율동

너와 푸른 춤을 추기 위하여 지붕으로 올라간다

한 옥타브 높은 E 음의 갈비뼈를 튕기며

지상의 낮은 꼭대기에 앉는다

샛노란 구름을 접고 나비 떼가 날아올 것이다

우아하게 연둣빛 날개를 흔들어 보라

스킨다이비스, 꽃이 없어도

공간으로 퍼져나가는 무한의 넝쿨

 

* 만데빌라: 남미원산의 넝쿨식물

 

 

8. 천계天界의 악

                                                   김정범

벚꽃이 스스로 떨어지던 밤,

겨우 열린 나의 새앙쥐 귀는

우주에서 쏟아지는 악음樂音을 들었다

골디락스 지대의* 원시 고원에서 자라나는 나무,

푸른 금속의 가지가 부딪치며 서걱거리는 소리

굽이치는 가지의 펄럭임은

산소의 불꽃을 뿜고,

우주를 두들기던 리라**의 고음古音으로 깨지며

내 귓불에 부딪힌다

가루로 부서져 내리는 처녀별의 파도

저 별엔 시조새가 날고 있을까

무수한 전파로 막힌 구름을 뚫고

창을 잃은 사람들의 방까지 날아들 수 있을까

푸른 잎의 깃털을 흔들며 날카로운 부리를 열어

죽어가는 꽃의 영감을 깨울 수 있을까

나의 새앙쥐 눈이 바랜 빛으로 누렇게 시들어가는 밤,

떠도는 공포의 시계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미궁의 소리, 천계의 악

부들부들 흩어지며

어둠 속으로 흘러가는 하얀 꽃잎들,

찰랑, 찰랑 부딪치는 눈물방울들

 

*골디락스지대: 한 항성 주위에서 지구와 비슷한 생명체가 발생할 수 있는 행성의 공전영역

**리라(Lyre): 기원전 300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시리아에서 쓰인 발현 악기

 

 

9. 붉은 뿌리

                                                   김정범

금이 간 계단을 오를 때마다,

지구의 끝에 닿아있는 뿌리를 본다

붉은 뿌리는 하늘로 뻗어

우주 먼지 안에서 산소를 찾는다

 

정지한 나의 발끝에서 시간이 왜곡되고,

폼페이 고양이는 최후의 발톱을 세워

바오밥나무 벽을 긁어댄다

고양이의 상처는 내 것보다 깊다

 

다이아몬드 행성에서 빠른 파동이 날아오고

그래프의 눈금이 초조하게 흔들린다

지구의 다이아몬드는 피로 물들어서

더는 아무런 값어치가 없다

나미브 사막의 얼음나무는 하얗게 꽃을 피워 보지만

녹슨 사람들은 서서히 모래에 덮여 말라간다

 

시간이 다시 역주행한다.

두 세기 반을 돈 내 시계의 외투에

그을음과 화약내가 밴다

나는 계단에 멈추어 선다, 울음이 터져 나온다

건조한 줄기가 기어 나와 발목을 감는다

 

공전의 무한궤도 어딘가에

아직 남아있는 마지막 꽃과 열매,

별의 푸른 그늘로 뻗는 지구의 뿌리

 

탐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숲에서 걸어나와

조용히 모선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인다

내 발이 잠긴 시간에서 까마득히 먼,

빛과 물의 분화구 속에서―

 

 

10. 액체로 지은 집

                                                   김정범

마을의 나무가 뜨겁게 끓고 있다

거품이 이는 액체의 집에는 양들이 산다

새끼가 태어나고,

조련사는 달구어진 탄소로 엉덩이에 낙인을 찍는다

 

햇빛이 스러지는 저녁

새끼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지만,

더운 벽에서는 증기가 피어오르고

어미 양은 젖은 목소리로 운다

 

끈적한 점액이 흐르는 천장,

빠르게 도는 시계에 번지는 휘발성 곰팡이

회오리바람이 불고 집이 파동을 친다

 

놀란 양들이 문을 두드린다

임계치를 넘은 자전축이 기울어지고

하나둘씩 기화하는 지붕과 주춧돌

양들이 뛰쳐나와 사라지는 길 위에서 말을 찾는다

 

바람에 말려 벗겨지는 조련사의 외투와 모자,

먼지로 흩어지는 검은 지폐의 신음

푸른 잎을 잃은 나무가 쓰러지며 마을을 덮는다

 

빈 집터 위에 고인 신의 눈물이

부서진 시계의 태엽에 떨어져 진동하고

공명하는 별의 궤도에서

아직 깜빡거리는 초록의 눈빛

 

가라앉은 거품의 틈 사이로

새끼 양 한 마리, 실눈을 뜨며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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