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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 '최명심 시인'안개는 부레가 없다 외 9편
복지TV청주방송 | 승인 2019.06.18 15:13
▲ 최명심 시인

[시인] 최명심

[약력]

* 경기도 출생

* 2008년 계간《다시올 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 부천여성문학회 회장 역임

* 부천문화예술공로상 수상 (2000년, 2010년)

* 인천문인협회, 내항문학회, 부천여성문학 회원

*《다시올 문학》운영이사

* 시집『안개는 부레가 없다』외 다수의 동인지

 

 

1. 안개는 부레가 없다

                                                 최명심

거잠포 샤크섬 선착장

짙은 안개에 배들이 묶여있다

귀로 읽는 바다,

파도가 검푸른 지느러미를 펼치며

풍랑 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다

 

바위틈에 몸을 숨긴 바다제비

짙은 안개에 발자국을 찍고 황급히 날아간다

 

쉬이 잠들지 못한 배들은 뒤척이는데

상어 입처럼 벌어진 거잠포

내 발자국도 안개 속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다

 

평생 지느러미를 움직여야 가라앉지 않는 상어처럼

부레도 없이 나를 삼켜버린 안개는

끝내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안개가 떠밀려와 섬이 된 섬

거잠포 매도랑

바다 밑에선 거친 상어 떼가 먼 바다로 떠나는데

나는 샤크섬 등대 아래 기대어 어디로 가야할까

 

2. 매미

                                                 최명심

골목 느티나무가 운다

저 안에는 얼마나 많은 목청이 저장되어 있을까

제 몫을 다 토해내야 여름은 갈 것이다

 

밤낮으로 퍼내도 끝이 없는 소리

느티나무의 울음도 말복이 지나자 말라간다

 

그늘아래 툭,

떨어진 매미 한 마리

 

계절을 다 퍼내고 빈 통만 남은 몸

발끝으로 건드려도 미동도 없다

 

짧은 삶을 살다간 거리의 악사

저 몸에는 얼마나 또 다른 목소리가 담겨야 할까

 

그의 연주를 들으려면 또 한해를 기다려야 한다

 

3. 민들레

                                                 최명심

늦은 봄바람에 떠밀려 옥탑방까지 이사 왔다

차고 단단한 시멘트 바닥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거리를 수없이 떠돌다 비로소 짐을 푼 곳

 

5층 옥탑방이 얼마나 까마득했던지

민들레는 세상의 높이를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턱없이 오르는 집세에 밀려 떠돈 지 십 년

떨어져 사는 가족들 함께 모여 살 날은 언제일까

 

풀어놓지 못한 짐들은 늘 상자 안에 갇혀있고

옥탑방 행거에 걸린 때 절은 작업복만 햇살을 받고 있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을 온몸으로 견디고

옥탑방 난간에 몸을 푼 민들레 꽃씨 하나

눈부신 햇살에 노란 꽃잎 반짝이는데

 

대문 켠에서 낯선 옥탑방을 올려다보며

컹컹 짖어대는 주인집 강아지가 사납다

 

때가 되면 바람 타고 날아갈 하얀 민들레꽃씨

옥탑방과 세상의 거리는 너무 먼데

 

흙 묻은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쓰러지듯 방바닥에 엎드린 민들레

오늘 밤 꿈엔 또 어느 곳으로 날아갈까

 

4. 빈집

                                                 최명심

양철대문이 붉게 녹슬어 있다

경첩이 삭아 반쯤 기울어진 문

마당엔 엉겅퀴 쑥부쟁이 기린초가 몸을 섞고 있다

 

서까래가 주저앉은 처마 끝에선 옥수수가 말라가고

검은 장화 한 켤레

먼지가 내려앉은 마루 끝에 걸쳐있다

격자무늬 창살이 부서진 창호지엔

빛바랜 압화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금잔화 압화에 잠시 손을 올려본다

내 손끝에서 바스러지는 꽃잎들

창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에

꽃잎들이 무너진 담벼락을 넘어가는 것이 보인다

 

갈라진 벽 귀퉁이에 걸려있는 낡은 바지

얼마나 오래 저곳에 못 박혀 있었을까

찢어진 벽지 위에 까맣게 곰팡이가 피어있다

 

저 방에서 꿈을 키웠던 사람들

지금은 어느 도시, 어느 변두리에 스며들어서

또 곰팡이처럼 까맣게 피고 있을까

 

5. 마네킹

                                                 최명심

찬바람이 몸속까지 파고드는 2월 끝자락

소래산 등산로 입구에서 그녀를 만났다

때 이른 반바지에 무릎까지 오는 등산 양말을 신고

양손에 스틱을 거머쥔 그녀

지워진 눈썹, 허공에 둔 시선은 미동도 없다

 

잘록한 허리와 긴 다리,

사람 눈길을 끌었을 그녀의 팔등신 몸매,

백화점이나 명품샵 쇼윈도에서

그녀를 닮은 사람들을 봤다

비바람이 그녀의 어깨를 밀어보지만

보라색 고어텍스 모자만 벗겨질 듯 위태롭고

여전히 그녀의 얼굴엔 표정이 없다

 

소래산 정상에는 새벽 등산객들

다투어 메아리를 불러본다

철제 난간을 잡아 흔들며 소리치는 한 남자,

“내가 잘 나가던 직장에 다녔는데”를 반복하며

새순 돋은 나뭇가지를 꺾어 허공을 휘젓더니

가파른 바람에 휘청 무릎을 꿇는다

 

그 남자의 깨진 무릎을 생각하며 내려오는 하산 길

그녀를 또 만났다

그녀가 썼던 모자는 어느 중년이 집어가고

다시 그녀의 머리에 씌워진 새 모자,

바코드 위에 쓰인 가격표를 살짝 뒤집어본다

 

어느 백화점쇼윈도를 거쳐 이곳 난전까지 떠밀려 왔을까

그녀가 모자를 팔고 있다

 

6. 봉은사 역

                                                 최명심

낡은 신발 뒤축처럼 닳은 사람들이 승강장으로 밀려오고

악어 아가리로 벌어졌던 지하철 출입문이 닫혔다

천장에 매달린 손잡이마다 낯선 손들이 포개지고

등과 등이 빼곡히 잇대고 선 전철 안

쓰나미에 무너진 집들 같다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는 엄마

분홍색 엠블럼을 가방에 달고 얼굴이 하얗게 변해가는 임산부

거북이 목으로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학생

무릎은 무릎끼리 부딪치고

옆구리는 옆구리끼리 뒤엉켜도

여전히 태연한 저 초점 없는 눈동자들

나는 눈을 감고 헛기침을 한다

 

다섯 시 반 알람 소리 듣지 못해

젖은 머리 민낯으로 허둥지둥 달려 나온 아침,

개수대에 수북이 쌓인 그릇

식탁 위에 먹다 둔 사과와 오렌지

방마다 팽개쳐진 양말들,

차창에 어른거리는 낯선 얼굴들처럼

그것들이 손잡이 끝에서 흔들린다

 

아침부터 지친 표정으로 우두커니가 된 사람들

어두운 차창에 비쳐 유령처럼 흔들리는 동안

봉은사역 승강대에서 완강한 사각형 사내 둘

나무토막같이 빳빳한 내 다리를 꺾으며

막무가내로 밀치고 들어온다

 

출입문이 다시 닫히고

전철은 쓰나미처럼 어둠을 집어삼키고.

 

7. 노예들의 합창

                                                 최명심

쉼 없이 파도를 넘은 두 팔이 지쳐있다

구령소리에 길들여진 어둡고 암울한 선실

선장의 명령에 규칙적으로 노를 젓는 기계들

 

책상의 반을 차지한 문서

파일에 저장된 보고서가 어깨를 짓눌러도

자신들의 삶을 저당 잡힌

노예들의 노예선은 멈추지 않는다

 

굳게 닫힌 선실 안에는

예금유치, 카드발급, 연체대금 회수

실적과 경쟁으로 긴 하루가 아우성이어도

말 못 할 사연 하나씩 간직한 채

자신의 꿈은 엉덩이 아래 고이 접어둔다

 

파티션 사이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나누어진 선실

같은 시간 죽도록 노를 젓고 밀어도

손바닥에 고이는 건 차가운 모래 한 줌뿐

 

자초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노예가 된 노예들

또다시 노예가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일평생 노를 젓다가 바다 깊숙이 떠내려간 사람들

여전히 발목에 족쇄 하나씩 찬 노예 아닌 노예들이

오늘도 힘겹게 하루를 젓고 있다

 

파도를 거스르고 거슬러 올라도

그들의 자리는 늘 어둡고 차가운 선실 안이다

 

8. 맹꽁이

                                                 최명심

비가 오는 날이면

코를 잡고 시작하는 놀이

 

“맹꽁” “찡꽁”

“맹꽁” “찡꽁”

 

맹꽁 선창하면

찡꽁 해야 내 코를 놓아주던 오빠

빨개진 코를 잡고 눈물 쏙 빼고 있으면

알사탕 하나 입에 쏙 넣어주더니

 

그해 여름,

바가지를 엎어 놓은 듯

맹꽁이처럼 퉁퉁 부어오른 배를 받쳐 들고

배꼽조차 손에 닿지 않아 순한 눈만 끔벅거리며

떨고 있던 오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오빠의 손을 잡고

‘맹꽁 찡꽁 맹꽁 찡꽁’ 해보지만

오빠는 기어이 부풀어 오른 배를 안고

여름이 가기도 전 눈을 감았다

 

그해여름

장맛비는 퍼붓고 개천가에서

‘맹꽁 찡꽁 맹꽁 찡꽁’

맹꽁이만 오래도록 울었다

 

9. 옷봉에 매달리다

                                                 최명심

세탁소 옷봉에도 서열이 있다

 

번호표를 달고 출입문 가까이 있는 옷봉에는

와이셔츠, 원피스, 철 지난 잠바들이 주인을 기다린다

 

세탁을 맡긴 사람들이 찾아가는 순서에 따라

자리다툼이 치열하다

옷봉에 걸린 지 사나흘 지나면 또 위치가 바뀐다

시간이 지난 것들은 늘 구석으로 밀리고

새로 들어온 것들은 바람이 잘 통하는 입구를 차지한다

스팀다리미가 내뿜는 뜨거운 증기,

습한 공기는 비닐 커버 안에서 가끔 물방울이 되기도 한다

 

내다 걸린 옷가지들이 서로를 밀쳐내도

끈끈하게 달라붙는 천장 구석

켜켜이 쌓인 먼지들이

고리 달린 장대가 몸을 스칠 때마다 바짝 긴장한다

 

여전히 쏟아져 들어오는 옷가지들

세탁소 출입문에 달린 풍경이 울릴 때마다

일제히 문 쪽으로 쏠린 시선들,

혹시나 하고 주인을 기다리다

세탁물을 맡기고 돌아서는 모습에

옷봉에 매달린 어깨들이 일제히 축 늘어진다

 

10. 복숭아

                                                 최명심                      

어수리 5일장 시골 장터

해거름에 집을 나서는 어머니를 따라 장터에 갔다

어느새 장터는 파장이 되고

채 못다 판 옷가지들을 쌓아놓고

장사꾼은 떨이를 외치고 있었다

 

꼬깃꼬깃 접힌 지폐 한 장으로

어머니의 장바구니는 복숭아로 채워지고

단내에 침이 고인 채

나는 촐랑촐랑 앞서 걸었다

 

복숭아를 반듯이 깎아서 할머니 앞에 내어놓으면

할머닌 한 조각 입에 물고 그 접시를 내 앞으로 밀어내셨다

그때마다 어머닌 내 손등을 치며

나를 데리고 텃밭으로 나가곤 했다

 

군데군데 벌레 먹고 상처 난 복숭아 앞에 두고

옹기종기 둘러앉은 형제들

썩은 복숭아에서 벌레가 나올 때마다

벌레 먹은 복숭아가 원래 더 달고 맛있는 거란다 하시며

윗목에 희미하게 돌아앉아 해진 양말만 꿰매던 어머니

 

해마다 비알밭에 복숭아가 익어갈 때쯤

집안에는 단내가 가득 퍼지고

마루 끝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초승달처럼 창백한 어머니 얼굴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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