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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 '박정선 시인'창 외 9편
복지TV청주방송 | 승인 2019.06.11 09:12
▲ 박정선 시인

[시인] 박정선

[약력] 박정선

* 1964년 충남 금산 출생.

* 2010년 『호서문학』으로 등단.

* 시집 『라싸로 가는 풍경소리』

 

 

 

 

 

 

1. 창

                                        박정선

너는 몇 년째 동굴에 갇혀있다

암흑 속에서 너 찾는 더듬이만 커져간다 기다리는 사람 오고 있는데 너의 눈은 점점 퇴화되어 간다 무뎌진 촉각 너머로 환청이 들린다 세상 밖 이야기 흐릿하다

유령거미가 쳐놓은 덫에 걸려

동굴 속 전설의 숫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갈루아벌레

물기둥에 매달린 너의 환상이 하얗게 굳어간다

꼽등이도 점점 늙은 엄마를 닮아간다

누군가 여자 배꼽에서 석순을 잘라 달아난다

눈먼 여자가 비명을 지른다

발자국 사라진 동굴 더 어둡다

 

2. 무허가

                                        박정선

안개 낀 무인도

빈 교회 종소리 울린다

흐느끼는 여자

뒤돌아선 발걸음 자꾸 멈추게 한다 찬바람 부는데

붉은 동백꽃 핀다

밤마다 선을 넘어버린 달빛

화사(火蛇)의 꿈

거친 파도를 타고 종을 치는 남자

풍랑만 싣고 떠나가는 배

흩어진 사랑만 줍는 남자

난 널 훔치지 않았다

 

3. 잉크가 마르기 전

                                        박정선

감자가 하지를 넘겼다

그 여자 가문 몸에선 물길이 사라진지 오래

하늘만 바라본 그녀 속살은 푸르게 멍들었고

줄기에 걸린 붉은 눈은 실핏줄만 가득하다

 

바다를 사랑한 여자는 밤마다 물길을 찾아

땅 속 달콤한 남자를 훔쳐 먹고 있다

고목나무에 기대어 감자 꽃은 타들어 가는데

태양을 버린 여자 몸에선 아린 맛이 난다

 

하지에 치룬 자주 감자

긴 낮 정점을 찍고도 여물지 못한 건

하지에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를 사랑한 죄

꽃잎을 타고 여자 오르가즘은 죽어가고 있다

 

후두 둑 후두 둑 비가 내린다

 

4. 길을 잃다

                                        박정선

아무도 본 적 없는 남자가 호수에 앉아 째즈를 부른다 검은 자켓에 풀어헤친 긴 머리, 다가가면 사라지는 저 남자가 돌아서는 내 발길을 자꾸 호수에 빠뜨린다

 

숨겨진 흔적이 호수에 굴절되어 떠오르면 기타를 찾아 물속을 헤매는 남자, 건져 올린 기타 줄엔 초대받지 않은 낯선 여자가 매달려 있다 어둠을 뚫고 여인을 부르는 기타소리 들린다

누굴까

 

주위를 둘러보아도 늪에 빠진 사람 아무도 없다

 

물안개를 뚫고 지나온 우산 속으로 가을비 스며든다

마지막 공연인 듯 흘러내리는 어둠이 나뭇가지에 걸쳐있다 박수소리 요란한데 이어지는 빌리 홀리데이 노랫소리 사라져간다 검은 우산을 쓰고 잉어를 찾아 나서본다 돌 틈과 물풀을 헤쳐보아도 길 잃은 내 발걸음 보이지 않는다

 

허우적거리다 물에 뜬 기타 소리 놓치고 말았다

당신을 원하는 나는 바보예요

예약 문의가 폭주한다

 

5. 붉은 회전의자 정체

                                        박정선

누구를 따라 왔을까?

회전의자에 걸친 빌딩 속 흔적들이 혼자라서 불안하다 도심 속 골목 이야기 빨간 외줄 타며 도도한 여자가 앉아있다 콜라병 몸매에 붉은 등받이, 녹슬지 않은 길고 흰 다리가 눈부시다

 

누구를 기다릴까?

대리석에 비친 검은 힐 소리 요란하다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여자가 별이 진 하늘을 바라다본다 별이 뚝뚝 떨어진다 회전의자 흔들린다

훠이 훠이

 

오랜만에 여자 손에서 새 망이 펄럭인다

기다리다 망에 걸려 푸드덕 거리는 나를 본다 겁에 질린 여자가 동공에서 울음소리만 건져낸다 붉은 회전의자 더 거칠게 흔들거린다

 

그가 다가가는 소리 위험하다

늦은 밤 산골 농장에 엉겅퀴 꽃 만발하다

의자 널 부러져 있다

 

6. 동상이몽

                                        박정선

낭떠러지에 매달려 애원하며 바라보는 눈빛

며칠째 떠나지 못하고 너를 향해 머물러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낚싯줄 한 가닥과 떡밥 한 개

 

가파른 협곡으로 내던지자 너의 실핏줄이 파닥거린다

누군가 밀어낸 낙석(落石) 협곡에 빠진 채 사경을 헤매고 있다

 

풀뿌리에 의존한 채 흔들리는 너

구조의 손길 대신 치밀한 거래를 하고 있는 나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를 손에 쥔 채 잉어 낚시를 한다

네가 쳐놓은 그물에서 아슬아슬한 한숨 소리 들린다

 

너는 아는가

누군가 벗어놓은 허물을 걸치고

피라미드 근의 공식을 풀어야 들어가는 문

바람에 찌가 흔들린다

 

7. 트라우마

                                        박정선

 

바위에 던져버렸다

 

산산이 부서진 추억이 돌 틈 사이로 흘러내린다 새끼손가락이 아리다 어둠 속으로 떠난 자리가 텅 비어만 간다 돌아선 발걸음 흔들린다

 

의사 처방은 언제나 알약이 전부였다 주사를 맞는 날엔 꿈속에서 동공이 마구 흔들렸고 나뭇잎 구르는 소리만 들렸다 몸을 지탱하는 하얀 벽과 천장은 소독 냄새로 가득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 아득하다 너는 언제나 빈손만 내밀뿐 아무 말이 없다

 

종일 그림자 주변을 맴돌다 주사 바늘에 찔린 너를 본다 차가운 눈빛 속으로 약물이 흘러넘친다 처리되지 않은 찌꺼기가 독사처럼 꿈틀거린다.

 

엄마,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아요

저기 자라지 않은 어린 아이가 울고 있어요

 

8. 투사

                                        박정선

뿌리는 안전할까

뿌리에 난 상처 보이지 않는다

갈등 원인을 부정하는 남자, 거친 파도에 앉아 짧은 낯 시간을 갉아먹는 무기력한 저 여자는 안전할까

 

무녀도 밤바다에 빠진 여자

부러진 낚시 대만 잡고 울부짖는 남자

억압된 욕구가 꿈틀거릴 때마다 비릿한 남자의 채취만 밀려온다

놓아주지 못하고 낚시 줄에 걸린 여자 흔적을 지우려 몸부림치는 남자

녹슨 아버지 낚시에 걸려온 어머니 신발 한 짝

아직도 겉도는 애증의 이름

잃어버린 너를 찾아 뻘밭을 헤매는 무녀의 눈빛

배 멀미 심한 무녀도에 가보셨나요

 

9. 수컷 본능

                                        박정선

방랑벽이 꿈틀거리면 더 거칠게 으르렁 거린다

 

여름 소낙비 맞으며 수사자가 뛰어가고 싶은 곳은 아프리카 드넓은 초원, 그러나 거친 태양을 따라가다 머문 곳은 수풀우거진 대전 천 뚝 방, 급하게 영역부터 표시하더니 그늘 없는 낚싯대 찌에 종일 한눈을 판다 건져 올린 것은 붕어 새끼 두 마리와 피라미 너 댓 마리, 꼬리치며 달아나는 물고기만 쫓아다니다 허우적거린다

삼 복 더위에 그을린 수사자 울음소리만 그물망에서 출렁인다

 

취기가 진동할 무렵 여자 손에서 저녁 비린내가 진동한다 스무 해 째 여자는 야생을 잃어버린 물고기에게 먹이를 준다 수컷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다음은 담쌓기다

 

10. 단서

                                        박정선

 

블루베리 농장 거미줄 즐비하다

한 눈 팔던 풀벌레들 아우성이다 겁 없는 말벌도 사투를 벌인다

 

가을밤 귀가하지 않은 곤충들 신원 조회 바쁘다

공중에 매달린 유기농 사체 껍데기 전시장이 유일한 단서

 

그리고 언제나

한쪽은 촘촘히 다른 한쪽은 느슨하게 짜 놓은 그물

 

수사망 좁혀오자

찢어진 그물에서 수런거린다

쉿, 무당거미의 넷째 다리가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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