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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 '김기산 시인'4월은 첼로음을 타고 온다 외 9편
복지TV청주방송 | 승인 2019.06.07 11:12
▲ 김기산 시인

[시인] 김 기 산 (본명 김영정)

[약력]

〔역임〕

* 서울 서문여중 교장

* 성균관대학교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 성대 총동창회보 주간

〔현〕

* 한국시인협회 회원, 서초문인협회 이사

* 제24회 성균문학상 (본상) 수상

* 공간시 낭송회 상임시인

* 도서출판「한터」대표

 

* 시집 『노을을 베끼다, 『빈집』

* 공동시집 『느슨한 저녁』외 11권

* 산문집 『12월의 기도』등

 

 

1. 4월은 첼로음을 타고 온다

                                           김기산

먼 길 떠나는 겨울바람

봄 햇살과 마주치는 눈 녹은 자리

땅이 꿈틀대고 숨길이 튼다

파릇파릇 돌미나리 귀가 돋고

 

저음으로 내리는 봄비에 나뭇가지들

귓불 빨갛게 숨을 몰아쉬고

움추린 박새들 어설픈 날갯짓에

봄이 희미하게 다가서고

 

아직 사이사이 찬바람이 묻어있는

3월의 아지랑이 집집마다 창문을 더듬고

동네 사람들은 하루씩 봄을 지고 나가

들에 펼치고 있다

 

속살 벗은 햇볕은

종일 동네 어귀에서 떨며

뽀얗게 첼로를 키고 있다

 

2. 국주論에 대하여

                                           김기산

농로에서 새참으로 때우던 막걸리에는

서민들의 컬컬한 소리가 들어있고

탁한 끝 맛에는 배곯던 시절

허기를 채우던 여운도 들어있다

 

그래도, 그에게 국주란 말은 붙이지 말자

국주에는 나라마다의 국민성을 담보하는 것이니.....

 

보드카는 슬라브 족의 저력이 숨어있고

스카치는 앵글로 섹션족의 질긴 힘줄이 느껴지고

맥주에는 겔만 족의 드넓은 목청이 들어있는가 하면

라틴족은 와인은 향과 빛의 멋이 흘러넘친다

일본 청주는 벚꽃 향의 가벼운 맛이 있는가 하면

중화대륙의 화주火酒는 발끝까지 열기에 빠지게 하니

바로 그들의 민족성을 대표하는 것이라

 

막걸리가 우리의 민족성이라 누가 말 하던가

막걸리는 짧은 숙성으로 막걸러 낸 술

그 속에 흙냄새가 진동하는 것은

품고 산 서민들의 땀 냄새가 익어서 일거다

잔과 입술에 묻어나는 희끗한 앙금

하얀 살결은 무겁지만

그 취기는 하늘을 날아오른다 하더라도

 

우리 민족에게도 빛깔이 있고

향기가 좋은 숙성된 맑은 술들이

곳곳에서 역사를 이어 왔으니

안동골, 대동강변, 경주, 전주, 서천 산기슭에서도

고유의 취기를 담은 맑은 물소리 차오르고 있으니

막걸리에 쉽게 큰 이름은 붙이지는 말자

서민들이 지켜온 술 그냥 사랑하면 되지

국주는 무슨 ...

자 –자- 위하여, 위하여!

 

3. 바다와 노인

                                           김기산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소이작도를 지나

승봉도에 닿았다. 갯바람에 까맣게 그을린 노인

석양에 물든 민박집 입구에서

불 꺼진 담배를 입에 문 채 손님을 맞는다

 

낯선 사람들이 다가와 지난 세월 물으면

허리 펴 보지 못한 날들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수많은 낙조에 절어 살았으면서도

한 번도 그 빛을 가슴에 담아보지 못한

노인의 허리는 해안선 같이 휘어져있다

 

갯벌에 쓰러진 목선 한 척 옆구리에 구멍이 나 있다

숨을 거둔지 오래, 한때 만선을 노래하던 깃발은

바람에 다 해졌고 오래전 그 배를 걸어 나온

노인, 이제 그의 바다는 어디에도 없다

텅 빈 민박집 마당으로 한나절 새소리만 앉았다 가는

이곳에서 깃을 세우는 것은 오직 바람과 파도뿐이다

 

4. 빈집

                                           김기산

적막을 향해 기울어 가는

양철지붕이 붉은 눈물을 흘린다

마당에 이름 모를 풀씨가 늘어나고

짙푸른 이끼가 집의 무릎을 타고오른다

어머니 웃음이 걸어 나올 듯

곰삭은 햇살이 잠깐 마루 끝을 기웃거리고

터를 잡은 바람이 손때 묻은 문고리를 흔든다

집 모퉁이에서 늙어버린 빗자루처럼

체온을 잃은 나의 뼈마디는 오늘도 헐겁다.

 

5. 사람이라서 미안하다

                                           김기산

어두운 새벽 소가 소리를 내어 운다

식구들 따라 잠이 들고 잠이 깨었으니

부리망 쓰고 걷던 들과 밭

그 많은 발자국들 되새김질 하며

골목길로 끌려 나가고 있다

 

몇 겁의 생을 건너와

내 짚더미에 떨어질 때부터 가족이었으니

트럭 앞에서 할아버지 산소를 올려다보고

산울림 같은 소리를 내어 우는 소

휑한 외양간을 잡고 놓지 못하는 할머니

인간들에게 뼈 한 조각까지

다 내어주고 돌아가는 소에게

이제 부처가 사랑하는

너의 종족이 모여 사는

그곳으로 가라 모진 인간들 세상 다 잊고

미안하다 오늘 사람이라서 미안하다

 

6. 어느 산객

                                           김기산

지리산은 은둔의 산

언제나 목이 마르다

안개 군단을 거느린 천왕봉

그를 만나러 오는 산객들에게

제 모습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 산

막걸리 몇 순배 나누는 산객들 사이로

지는 햇살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 앉는다

 

저녁 산 한기 밀려와

흔들리는 다리 짚고 서둘러 하산하는 길

머리가 덥수룩한 젊은 이 다가와

손을 잡아준다

 

‘올해 ...?’

‘나이 잊고 산지 꽤나 되었소’

‘.......’

 

7. 용서해야 하는 이유

                                           김기산

친구를 용서하는 것 보다

원수를 용서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

용서받는 것보다 나으니 먼저 용서하라

너도 누군가로부터 용서 받고 살고 있다

서둘러 냄새를 묻어버리라

언제까지 자신 속에 장기투숙 시키겠는가

아무리 네 등에 비수를 찔러 넣고

낄낄대고 다닌 해도 불쌍한 것이니

약한 자의 길이 아니던가

네 안에도 똑같은 것 있을지 모르니

남 책하는 마음으로 너를 더 살피라

웃음과 성냄은 한 길 위에 서있다

 

8. 저 편

                                           김기산

사진을 들고 벽제 언덕을 오른다

배곯던 시절 보리밥 꾹꾹 눌러 퍼주시던

외숙모 마지막 가시는 길목

6호실 전광판에 두 시간 후의 차례를 알린다

상주들은 금세 꼬부린 노숙자가 되고

여인네들은 구내식당 한 쪽 구석에서

피곤한 커피를 마신다

슬픈 물살이 문밖으로 수없이 밀려나가고

그 문으로 수없이 들어서고

 

개똥밭과 저승 사이 불길 터널을 들여다보다가

쉰이 넘은 딸은 쓰러지고

그 위로 가족들 울음이 겹겹이 덮이고

한 생의 흔적 1시간 40분에 모두 끝이 난다

한 줌으로 요약된 분골함의 온기를 따라

마지막 배웅하러 산길을 간다

산자들은 끝까지 따라 갈 수 없는 곳에서

숲속 바람 길에 올려드리니 넉넉한 웃음의 외숙모

하얀 배꽃으로 다시 피어나신다

영원한 이별의 저편 그 경계가 바로 여기인가

 

소음의 바다로 다시 돌아오는 이쪽 사람들

모두가 잠에 빠지고

세상은 무심히 또 하루를 지나고 있다

 

9. 편지 - 奧地 산막에서

                                           김기산

마음 덧날 일이 뭐가 있겠나

걱정하지 말게

세상 낯설어지면서

혼탁한 웃음들 피해온 곳이니

 

목이 메었던 일들이야 누군들 없겠나

회오리바람은 어디나 있는 것

불편한 것 없네

이제 집안까지 달빛을 들이고 사니

발걸음 흔들리고 한참씩 눈뜨지 못하던

어지럼증도 점차 나아지겠지

 

머릿속 소음들 한줌씩 개울물에 헹구고

저녁 플벌레 소리에

날마다 가슴 굳은 살 빠지고 있으니

호박순 데쳐서 강된장에 찍어먹는

요즘 삶이 나에게는 더없는 어머니 품이네

 

오늘밤도 강아지 달을 보고 컹컹 짖을 게고

평상으로 별들이 쏟아져 내릴 테니

무김치와 찬 소주잔이 내 하루의 품삭일세

가슴속에 미움이나 움트지 않게

하루하루 조심하며 살 뿐이네

 

10. 夏安居

                                           김기산

雨氣에 나서면 성한 생명들 밟느니

그냥 토굴에 있으라

시선 흔들리고 숨 고르지 못한 일들

욕심에 그슬린 자국들 반눈 감고

천천히 짚어보라

 

초침 소리 급하게 꽃상여를 밀고 가도

하늘은 언제나 그 자리

인간들만 숨차게 오고 간다

 

토굴 밖은 천둥과 우레가 치고

장마와 소나기가 쓸고 가도

외눈하나 꼼짝하지 않고 백일은 지나야

하안거 결재結齋의 날이 온다

눈부신 내 안의 하늘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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