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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 '오영록'고등어자반 외 9편
복지TV청주방송 | 승인 2019.05.16 11:00
▲ 오영록 시인

[시인] 오영록

[약력]

* 강원도 횡성출생

* 다시올문학 신인상

* 문학일보 신춘문예(시부문)

* 머니투데이 신춘문예(시부문)

* 대전일보 신춘문예(동시부문)

* 청계천문학상수상

* 제6회 청향문학상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동인

* 빈터동인

* 전망동인

* 탄천문학동인

* 저서 : 빗방울들의 수다(창작지원금 수혜)

* 묵시적 계약(창작지원금 수혜)

* 공저 : 슬픔의 각도 외 다수

 

1. 고등어자반

                                          오영록

좌판에 진열된 간 고등어

큰놈이 작은놈을 지그시 껴안고 있다

넓은 바다를 헤엄치던 수많은 인연 중에

전생이 부부였던지 죽어서도 한몸이다

부부로 함께 산다는 것이

고행임을 저들은 알고 있는지

겹으로 포개진 팔 지느러미로

고생했다고, 미안하다고

가슴을 보듬고 있다

죽어 이제야 온전히 이룬 부부의 연을

묵묵히 받아내는 모습이다

눈동자엔 푸른 파도가 출렁였지만

배를 열어보니

아내처럼 텅 비어 있다

마지막까지 온전히 보시해야

열반에 드는 것인지

소금사리

와스스 쏟아진다.

 

2. 옥탑방이 사는 법

                                          오영록

옥탑 방을 얻을 때는 튼튼한 난간이 없어 밖이 잘 보여야 한다

바람 소리 구름 소리 새소리가 잘 들어와야 한다

 

점심으로 라면을 배불리 먹고 물끄러미 아래를 내려다본다.

외식하고 돌아오는지 집주인이 고급승용차에서 내려

어기적어기적 들어온다.

내가 내려다보는 줄도 모르고 전봇대 발가락에 가래침을 뱉었다

가래침으로 여러 개의 시선이 동시에 꽂혔다 

내 눈알도 꽂혔다

고기를 먹었는지 피 냄새가 물컹거렸다  

 

번쩍번쩍하던 차도 뿔뚝 나왔던 배도 아주 허름한 구제에서 보았던 장난감이다

그렇게 권위적이던 모습이 순간 내 발밑이다

그러고 보니 늘 내 밑에서 먹고 자고 으스댔다

 

정육점 김 사장도 빌딩이 몇 개라는

박 사장도 아주 하찮은 땅강아지처럼 바닥을 긴다.

휘황찬란하던 불빛도 발아래로 보이고

구름 위에 있는 천국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멀리 보이는 종탑 십자가마저 눈 아래로

아내 사랑도 잠시 아래로 보인다

 

가끔 날개를 가지고 싶었던 적 있다

비둘기도 건물 중턱으로 날아든다

난 날개가 없어도 저 날개보다 위에 있잖은가

 

거리의 아비규환이 악을 쓰며

건물 벽을 기어오르다 주르르 미끄러지고

또다시 오르다 미끄러져 나동그라지곤 한다

 

나는 지금 비스듬히 구름 베개를 베고 누워

반쯤 감긴 눈으로 발밑 저들의 아비규환을 물끄러미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다

 

저들은 여기가 천국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사찰로 예배당으로 손바닥 발바닥 되도록

쫓아다니고 있다.

 

모두가 발아래다.

 

3. 문경새재

                                          오영록

박달나무 속에는 조탁(彫琢) 공이 살고 있다

겨우내 저 둥근 나이테를 빗으로 깎아놓고

다듬어 조각해 놓았다가 보부상 보따리에 끼워 넣는다

 

박달은 본디 물렀을 거다

겨우내 마음을 다잡듯 햇빛에 바래고 눈보라로 담금질하여

마음을 다잡듯 그리 단단해졌을 거다

새소리로 결을 만들고 재를 넘는 바람의 가쁜 호흡으로

단단해졌을 것이다

 

겨우내 나이테와 꽃을 조탁하였다가

이른 봄부터 가지가지 연등처럼 연초록 등을 매다는

수고로운 장인의 손길

 

햇볕에 천 일을 말리고

뒤틀린 결을 천 일 동안 바람으로 바로잡고

유월 소나기로 정제하고 나야

어느 집 식탁으로 대갓집 참빗이 될 수 있다

 

참선에 들지 못한 나이테는

또 이내 울긋불긋 물들였다가 이듬해 다시

조탁에 들어가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장인이 있다

 

겨울날 박달나무에 귀를 대보면 그 조탁하는 소리가

쿵쿵 들리기도 했다

문경새재에 들면 숟가락이나 주걱 깎는 소리가

메아리치기도 했다.

 

4. 모서리

                                          오영록
면과 면이 모여 사는 곳
면과 각이 많으면 많을수록 둥근 모서리

당신의 면과 나의 면이 모여 우리가 되었듯이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모서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건물 속에 수만 개의 모서리가 산다
저 많은 모서리도 건물이 되기 전에는 하나의 면이나 각이었을 뿐
건물이 되지 못했다

모서리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많은 뼈가 모여 유연한 각을 만드는 인체처럼
모서리는 각이면서 부드럽기에 따스하다

너와 나의 두 각이 모이면
사랑이라는 모서리 하나 겨우 생길 뿐
화합이라는 모서리 속에는 셀 수 없는 각들이 모여야 산다

산모퉁이 구부러진 철길을
모서리들이 각자의 각으로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있다
면들을 모아 모아서 가는 
모서리가 눈부시다.

 

5. 수각(水刻)

                                          오영록

비 그친 오후, 웅덩이     

한 뼘도 안 되는 수심으로 하늘이며

뒷산이며 키 큰 가로수가 수직으로 빠졌다

구름이 가면 가는 데로 깎아 담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슴에 품고 있다

가장 낮은 몸으로 가장 높은 것을 어르고 있다

높고 낮은 것을 한 뼘 속으로 품어

높아야 한 뼘 낮아야 한 뼘이라고

증명하고 있다

가만 들여다보니 산수화 한 폭 쳐 놓고

 빼놓을 성싶은 못난 나까지 마음을 한번 헹구라는 듯 담고 있다

그것도 한 뼘의 깊이로

높고 낮음에 그 무엇도 자유 없음을 말하듯

화사한 연분홍 벚꽃도

오색찬란한 공작의 날개도

흑백으로 음각하고 있다

 

6. 주산지(注山池)에서

                                          오영록

스님들이 목욕탕에 왔다
동안거를 끝냈을 뿐인데 누대 헤어졌다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등이라도 서로 밀어주는지
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후드득 빗방울 떨어지니 
어 시원타, 어 시원타
노승의 몸에서 쏟아지는 경전소리
직박구리만 화들짝 난다

햇빛으로 덥힌 온탕
산그늘로 식힌 냉탕을 오가는 저 승가(僧伽)   
바람 불 때마다 서로 머리를 밀어주는 저 모습
아침이면 잠시 서산으로 바람 탁발(托鉢) 갔다가
저녁이면 다시 동산에 올라 설법으로 몸을 말리는 그림자들
때가 없으니 영혼을 씻고 있다

저 속살을 슬쩍 훔쳐 본 적 있는데
얼마나 씻고 있었는지 백옥보다 더 흰 성체(性體)
만지면 뽀드득 소름 돋을 것 같은
저렇게 천 년을 씻었으니 어찌 아니겠는가!
얼마나 더 씻고 씻어야 혼까지 깨끗하게 만들 수 있는지
유피(楡皮)가 되는지

비 오는 날은 그 비 다 맞으며
평등의 수면을 바둑판 삼아 똑똑 돌을 놓고 있다
꽁꽁 얼어붙어 돌을 놓을 수 없으면
무릎 착 꿇고 동안거에 들어
묵언 수행 하겠지

 

7. 길

                                          오영록

할머니가 구부정한 길을 구부정하고 걸어가고 있다

그 뒤

거리를 일정하니 할아버지가 천천히 따라가고 있다

그 사이로 잠자리도 날고

나비도 날아가고 참새들도 날았다

꽃에서 꽃으로 난 길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로 난 길

잠시 멈춰 허리를 펴고 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곳에 와서 허리를 한번 편다

저들이 다니는 길 허물어질까 봐

저리 수그리고 가나 하는데

이번엔 멈췄다

아래를 자세히 보고 있다

지렁이며 개미며 풍뎅이가 닦아놓은 길

그 길 무너지면 집에 가지 못할까 봐

아침에 나섰던 길

또박또박 찾아가시는 할머니

눈이 침침해져야 보이는 저길

뉘게도 보이지 않는 저길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는

사랑이 오가는

저 길

 

8. 나비의 순장(殉葬)

                                          오영록

바람의 장례를 보고 있다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는 나비의 죽음

지난번 날개를 편 채 죽었던 잠자리 날개 밑에서

웅성거렸던 한 무리

사인은 저 날개를 떠받치고 있던 바람의 죽음 때문에

추락사한 것이다

날개를 실어 나르던 바람도 유한의 생명이어서

날개의 죽음이 있는 것

날개 밑에 모인 저 웅성거림

어쩌면 저 무리가 바람의 조상일지 모를 일

나비 날개의 넓이만큼 흙을 뒤집고

봉분을 만들고 있다

주검을 가만히 들어 올리자 날개 밑으로

흐르는 이 고요

바람의 죽음이 틀림없다

날개에 바람이 이는 것이 아닌

바람에 날개가 날았던 것

바람에 대한

날개의 보은(報恩)이다

 

9. 노인정

                                          오영록

왕년에 한 가닥 하지 않은 사람 없다고

다투어 목청을 높여보지만

귀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로 세워도 설 수 있는 나이

서로의 이력을 묻지 않기로 했다

모로 선다는 것은

아직 꿈이 있다는 증거다

가로와 세로가 같아 설 수 있는

모로 서기를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음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로 선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아픔을 주지 않겠다는 작심이다

까맣게 태웠던 지난 세월의 이력

무명으로 혹 유명으로 살아온 저 노구들

제 살점을 깎아 세운 탑이다

아직 흑심이 길다는 것은

무엇이든 찌를 수 있는 가시이므로 수치다

몸과 마음이 닳고 닳아야 작아지는 욕망

흑심이 작을수록 아름다운 것

이들은 버림받은 것이 아닌

스스로 길을 터주는 베풂이다

살점을 도려내는 고통도 있었지만 지금 이 모습이

가장 완벽한 한 송이 꽃이다

서로의 꽃잎이 되기도 하였고

꽃술이 되기도 하였던 몽당연필들

흑심회로 모였다.

 

10. 사랑에 빠지다

                                          오영록

농부는 바보인 줄 알았다

본전도 안 되는 일에 왜 그리 목을 매며 하는지

 

그것도 한해 해보면 그다음 해는 안 할 것 같은 저일

허탕 치고 또 하고 또 허탕해도 또 돌보는

아무나 하지 못할 저일

 

퇴직하고 텃밭을 일구면서 알았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우리는 로맨스다

아니 농부는 참 로맨스였다

 

농부는 불륜이라고 아니면 바로라고 했던 저 사랑

저 깊은 외기러기 사랑을 감히 뉘라

이렇고, 저렇고 하겠는가?

 

눈을 감아도 오매불망 눈언저리 삼삼할 것을

어찌 그 하찮은 돈 따위와

비교하고 따졌을까

 

가슴 저 바닥 어디쯤에서 물컹물컹 솟구치는 이 뜨거운 피를

아 진정 변치 않을

사랑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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