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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 '양문규'까치 새끼 외 9편
복지TV청주방송 | 승인 2019.05.10 09:28

 

▲양문규 시인

[시인] 양문규

[약력]

* 1960년 충북 영동 출생

* 1989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 시집 『벙어리 연가』,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집으로 가는 길』, 『식량주의자』, 『여여하였다』

* 산문집 『너무도 큰 당신』.

 평론집 『풍요로운 언어의 내력』.

 논저 『백석 시의 창작방법 연구』 등

 

 

1. 까치 새끼

                                     양문규

까치 새끼 밥 먹었나

이 세상 머리 내밀고

여적 듣는 말

 

울 아부지 까치였으니

그 아들 까치 새끼라

쉼 없이 듣던 생생한 소리

 

까치 새끼 밥 먹었나

천태산 은행나무 꼭대기

올려다보지 않아도

 

까치 새끼

또 그 아들의 아들

천 년 비바람 넘나들며

 

밥 잘 먹고 있나

 

2. 이별초

                                     양문규

처서 지나고

모깃소리 들릴락 말락 할 즈음

이별초 폈냐?

엄니 전화하신다

이별초라니,

여든 살 넘어도 이별은 늘 그리움이려니

무른 살과 아픈 뼈 마디마디 바쳐

여여산방 마당 귀퉁이

노란 상사화 핀다

한마음 잊을만하면

저녁노을 저 너머

젊은 엄니 홀로 서 있다

 

3. 늙은 나무가 사는 법

                                     양문규

한겨울 세상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늙은 나무들을 본다

 

한평생 붙들어 맸던 구름과 바람과 비와 햇살과 안녕

같은 하늘 속에 집이 되고

그늘이 되고

양식이 되던 풀과 꽃과 까치와 다람쥐와 애기벌레들과도 안녕

봄날 한 아름 나뭇등걸 속에 움틀 푸른 열기의 유혹마저도 영원히 잠재운 채

안녕, 또 안녕

 

고래심줄 같은 뿌리가 폭설과 맞닿는 순간

한 생은 극한이면서 또 얼마나 황홀한 사랑인가

서성이는 통곡 대신 허공을 들쳐 메고 가는 하얀 길

 

누구도 나이테에 그려진 죽음을 읽지 못하지만

늙은 나무들은 안다

 

걸으면서 쏴아 센 비바람에 잔가지 몇 개쯤 버리고

누우면서 거친 눈보라에 굵은 몸 통째로 내려놓으며

저 높은 곳이 언제나 무덤이라는 것을

 

하늘을 떠가는 늙은 나무들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본다

 

4. 적독(積讀)

                                     양문규

시루떡 같은 책이

큰방 책장 가득 쌓이고

윗방 이불장 위에 책상 위에 켜켜 쌓이고

주방 식탁 위에 그릇처럼 쌓이고

사랑방 내려앉은 툇마루 위에

햇살과 손잡고 쌓이고

세탁기 골골 돌아가는 소리 위에

화장실 좌변기 물통 위에 똥내를 풍기며 쌓이고

현관 신발장 위에

마루에 쓰레기통 위에 흙먼지 뒤집어쓰며 쌓이고

천 년 은행나무 아래 은행잎처럼 쌓이고

쌓이고 쌓인 책을 잠을 자다가 읽고

밥을 먹다가 읽고

똥을 누다가 읽고

신발을 신다 읽고

읽고, 읽다가 또 책을 쌓고

또 하루가 쌓이고

몸의 중심에 쌓인 또 다른 책이

또 나를 불러 또박또박 읽고

 

5. 맨드라미

                                     양문규

여여산방 옆 오래된 닭집 있다

 

지륵골 보살도 배나무집 할매도 끝집 영감도 날망집 할배와 북고개 아재도 영국사 처사도 양산면 우편배달부도 천태산을 찾는 등산객도 입 모아 부르는 집

 

모처럼 찾은 손님 밥 한 끼 함께할 수 있는 집

다디단 술이 찰방찰방 차고 넘치는 집

마을과 절집과 우편배달부와 등산객이 한데 어우렁더우렁 꽃이 되고 별이 되고 흥성흥성 노래가 되는 집

새벽이면 수탉이 목청 높여 꼬끼오 문을 열고 암탉이 푸드덕 붉은 해 알을 낳는

 

평상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는 영국동 그 집

 

6. 행복한 사진

                                     양문규

늙은 몸이 폭설 끌어안고도 우렁우렁 꿈이 세다

 

고요한 나뭇등걸 속에는

아직도 푸른 잎사귀들이

귓바퀴를 쫑긋거린다

 

광기에 찬 예술가들,

포장지로 감싼 성직자들,

혀가 긴 정치가들,

곰팡내가 나는 공직자들

피 묻은 입술의 사업가들,

……그래그래

우리는 모두 견디는 중이다

 

한때는 나도 세상을 등 뒤에 두고

절간에 숨어 살았지만

 

꿈은 저렇게 무거운 옷을 걸치고도

앵글 앞에서 환한 표정을 지어줄 수 있다

 

다람쥐에게 슬쩍

등 내밀어 주는 일

너구리에게 사글세도 없이

굴을 내주는 일

딱따구리를 불러들여

구멍을 빌려주는 일

 

해와 달과 별에게

……그래그래

또, 나의 가장 뜨거운

눈을 맞추어 보는

 

천 년 은행나무는 아직 힘이 세다

 

7. 오십 대

                                     양문규

생을 몽땅 강가에 걸어둔 적이 있다

 

달맞이꽃과 망초꽃이 끝도 없이 피고 지는

젊은 날 강가를 떠돌며 노란 물결 속에 얽히고설켜 한 시절 황홀하게 살던 때가 있다 묻지 마

어느새 옆구리 흰죽만도 못한 꽃잎 닥지닥지 엉겨 붙어 무릎이 아픈

꽃이라고 다 꽃은 아닌 것

그 속내를 더 이상 내게 묻지 마

 

달과 해를 바꿔가며 웃고 울고 하던 때가 엊그제

소나기 한두 차례 지나가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강가를 다녀왔을까

두 송이 꽃이 한 몸으로 뜨는 달과 지는 해를 만져보며

가장 낮은 자리 저보다 훨씬 빛깔 고운 사랑으로 남고 싶은 걸까

 

버려진 세탁기가 잡풀더미 속에서 생을 탈수하고 있다

 

8. 배나무집 할매

                                     양문규

가긴 어딜 가 그냥 살면서 똥 냄새가 부처려니 혀

 

저 은행나무 좀 봐, 바람에 설렁설렁 다 내어주잖어 모지란 중생 그냥 냅둬, 은행이 은행이라 나무는 나무고, 지 거라고 쇠자물통 들고 달라들어도 어디 지 것이 되간디 나야 저승 갈 날 얼마 남지 않았지만서도 자네는 저 은행나무가 이 세상 구린내 싹 없애는 날까지 여기 살어 내가 이 첩첩산중 지륵골에 시집와 칠십 년을 살아도 이렇게 지독한 구린내는 처음이여, 망할 저 절집 개 들어오고부터 천태동천이 똥 바다 되었당께

 

왜 자꾸 짐은 싸고 그려 그냥 여기 살으랑께

 

9. 겨울비

                                     양문규

산중 빗님

따각 따각

양철지붕 치는 소리

봄인가 싶어

취중 창밖

슬쩍 슬쩍 바라보니

앙상한 나뭇가지가

나를 보며 웃는다

 

10. 여여하였다

                                     양문규

지난겨울 천태산은 눈보라 치는 절벽에서도 여여하였다

구절초 산방 주인 잃고 구들장 내려앉아도 여여하였다

키 큰 미루나무 싸늘히 식은 가지들 매달고도 여여하였다

까치집 흔들어놓는 세찬 바람소리에도 여여하였다

언덕 위 날망집 늙은 과부 찬물에 홀로 밥 짓고 빨래하면서도 여여하였다

천 년 은행나무 폭설 속에 잔가지 뚝뚝 내려놓고도 여여하였다

옆 감나무 꼭대기 얼어 터진 홍시 쭈그렁 살 내리고도 여여하였다

깔딱고개 가시철망 둘러쳐져 고라니 넘나들지 않아도 여여하였다

빙판길 숨 고르며 오르는 사람 발자국 하나 없어도 여여하였다

염불하는 젊은 중 빤질빤질한 이마빼기도 여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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