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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 '최경선 시인'
복지TV청주방송 | 승인 2019.03.08 13:24

[시인] 최경선

[약력]

* 2004년 『문예사조』등단

* 여수시 거문도 출생

* 한국문인협회회원 시원문인협회회원 시에문인협회회원 시섬문인협회회원

* 시집 『어찌 이리 푸르른가』

* 공조시집 『모자이크』外 다수

 

 

푸른 자연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의 소리 처럼 맑고 청아한 시적 표현이 담긴 최경선 시인의 시(詩)를 소개한다.

 

 

1. 그 섬 거문도

                                      최경선

곱발 디디면 바다가 보이는 고만고만한 돌담 집이거나

얼기설기 묶인 지붕 너머 바다의 정수리가 훤히 보이거나

몇 발짝 골목을 나서면 시푸른 바다로 통하는 곳이다

혀 둥글게 말고 턱 빠지게 하품하며 느릿느릿 걷는 고양이 폼이

적나라하게 고요를 느끼게 하는 곳

저 혼자 불 밝히는 등대가 있고 전설처럼 *신지께가 어부를 지켜주는 곳

손끝 유달리 까매도 부끄러울 것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온 몸으로 바람을 막고 온 몸으로 바람을 받아들이는 곳

하늘과 바다가 허락해야 닿을 수 있는 바로 그 섬

어야디야 어기야 디야 어쩌다 들려오는 사무친 뱃노래에

어~야 디야 어~ 기 여차 끊임없이 되뇌다 먹먹해지는

그 섬을 나는 떠나왔다

 

2. 바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최경선

푸르던 바다, 물색없이 헤살거리고

나비 엉겅퀴 꽃에 꽂혀 휘~청이며 날자

삘기 꽃 온몸 흔들며 깔깔깔 웃어재낀다

까칠하던 풀숲 다복하게 되세워질 때

녹산 능선에 앉아 내 안의 바람 잠재웠고

똬리를 풀던 고사리를 보면서

때를 놓친 건 아닐까 싶어

몇 날 며칠 끙끙 앓기도 했다

구실을 찾아야 했음으로

고요가 서걱거릴 때까지 입을 닫고

마음 출렁이는 곳에 눈길 주었다

바람은

가득히 펼쳐지다 수평선으로 사라지는가 하면

어깨를 잇대고 밀려와 바위를 삼켰다 뱉고

삼켰다 뱉는 그 순간, 보고야 말았다

 

하얗게 부서지며 바람의 날개가 펼쳐졌다

 

애초에 그랬던 것처럼

바람은 수억 년 전부터 그렇게 시작되었다

 

뱃고동소리에 바다가 흔들린다

떠나야겠다

   

3. 어머니의 낙(樂)

                                      최경선

아침나절 안개 가득하다는 고향 소식에

민화투나 치며 집에 있으라던 당부는 잊었는지

수화기 너머 신호음만 파도처럼 들린다

별일 아니라는 듯

익숙하게 갯가로 스며들었다는 걸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스멀스멀 앞섬이 사라지면 등대 기적 소리 들려오고

하나둘 능선이 지워지면 낮은 집들도 자우룩하게 잇대어져

하얗게 사라지는 거문도

여름철 이맘때면 흔히 있는 일이다

 

안개 때문에 마음 쓰여서만은 아니다 

갯가로 나선 길 따라 마음 길이 그렁그렁 보인다

 

인동초 흐드러진 서당이끼미 지나며 

화전놀이 하던 어여뻣던 시절을

걷다 걷다 뻐꾸기 소리 들리면

까슬까슬한 보리 이삭 줍던 가난했던 때를

갱번가에 닿으면 가마떼기 쭉 깔고 멸치 말리던

풍요롭던 한때가 그리워서

사무치게 그리워서 그 길을 걷는다는 걸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느지막이 돌아오는 길 따라

은하수 흩뿌려진 새하얀 아미초 꽃길 지나

노랑원추리 가득한 언덕에 걷다 쉬다 걷다 쉬다

도착했을 거라는 걸 알고도 남는다

 

해거름에 연결된 전화

수화기 닳도록 들었다 놨다며 투정부리니

출렁이는 목소리로 안개 다 걷혔다며

이 빠진 웃음 사이사이 고동과 보말 따고

가쁜 숨 내 뿜고 들이키며 거북손과 담치 캔 이야기

수만 겹 파도소리 들려준 끝에

그거라도 해 보내야 낙(樂)이재 하신다

 

4. 붉은 저녁 (당신이 그립습니다)

                                          최경선

무지갯빛 물살 가르며 다다른 고향

돌담장 담쟁이 따라 걷다보면

바랜 문 열고 기다리고 계실 것 같은 아버지

넉넉한 마음으로 호령하던 그 바닷가

여름밤 선창가에

가마니와 돗자리에 누운 사람들 없듯이 

멸막에 올라선 폐선위엔 풀들이 자라고 

꼴뚜기, 오징어 나눠주던 인정도

빨갛고 노랗게 펄럭이던 만선 깃발도

보이지 않네요.

  

파도에 조약돌

끝없이 구르던 곳에

차 달리는 해안도로가 생겼고

 

드나드는 물결 따라

바다만 가득 출렁거리다

빈소라 채워지는 바람소리만 

아득합니다

 

신명날 때면 어김없이 막내딸 업고

천금 같은 내 새끼 귀하고 귀하게 자라라며

엉덩이 토닥이던 아버지

 

당신 앉으셨던 해변어귀에 서서

빨갛게 물드는 저녁입니다

 

5. 어떤 추임새

                                      최경선

몸속 수도꼭지를 여는지

힘들 땐 입술 동그랗게 오므린 채

입 밖으로 쉭-쉭 쏟아내는 물소리

그 리듬에 맞춰 손놀림도 빨라진다

 

그녀 전생에 물이었을까

 

볼일 보는 일에도

부끄럼 없이 쉬-이 소리를 내는

유난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추임새에

속없이 흉을 봤더랬다

 

어느덧 힘겨울 땐 쉬잇쉬잇 추임새를 넣고

손 허리 지탱해야 바르게 일어서는 여자를

굽을 대로 다 굽어진 그녀가

설핏 짠하게 바라보며 숨 고르기를 한다

 

굽은 곳을 지날 땐 물도 굽어 흐른다며

조금씩 굽어지는 여자에게

서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듯

괜찮다 괜찮다 한다

 

찬물도 예를 다해 공손하게 마시는 그녀도

뜨거운 커피 조심스럽게 후-우 마시는 여자도

전생에 물이었는지 모른다

 

재게 해치우던 간단한 일거리도 한나절

무기력해진 여자

볼일 보는 소리 조오올 조오올 고요하다

 

여자 숨 고르기 하고 있다

 

6. 꽃다운 이유

                                      최경선

 

참새 날아간 울타리에 앉겠다고 자꾸만 얼굴 들이미는 호박꽃봉오리 다섯 개의 꼭짓점 모아 하나의 별을 머금었습니다

겹겹이 꽃잎 열고 화안히 꽃피운 장미 우주를 품듯이 푸른 별이 꽃을 떠안고 있습니다

곧은 줄기에 곰비임비 꽃물 오른 접시꽃 예사롭지 않은 뒷모습도 별이 즐비합니다

해바라기 씨앗 하나하나 탱탱하게 차오르도록 햇살의 감촉 빼곡하게 싸안은 별들도 있답니다

저기, 보도블록 틈새로 발돋움 한 민들레 담벼락의 그려진 노란 별들이 후욱 풀어놓는 중입니다

쭈글쭈글해진 엄마 젖가슴에도 둥근 돌기가 돋아있습니다

고백처럼 꽃을 품었던 흔적이라 했습니다

꽃이 꽃다울 수 있는 건

곡진하게 품어주는 별이 어딘가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7. 가을 내소사 

                                        최경선

입소문 따라 나선 길 

닿는 곳마다 버거운 풍경 펼쳐집니다

 

하필이면 해우소 곁에 난데없이 꽃피운 이야기

너나없이 만지고 흔들어댑니다

 

이상하지요 

부끄러울 것도 없는데

울먹울먹 참느라 여린 꽃망울

불그레합니다

 

단풍터널 사이사이 발묵된 듯한 고목들 

그 곁에 머뭇거리다 슬며시 기대어봅니다

삭정이 툭, 건드리면 혼절할 듯한 그 수묵화

불을 뿜듯 뜨겁습니다 

 

햇살 깨알같이 품고서  하아, 부끄러운지

잎 잎마다 발갛게 달아오르고 

더러는 바람에 접힌 채로 몇몇 닢은 갉아 먹힌 채로   

붉게 물들이는 벚나무라는 걸 오래 바라보다 알았습니다

 

설렘으로 다가간 내소사

 

뒤돌아보니

대웅보전 들여다보지도 않고

지조 높은 말씀 헤아릴 생각은 더더구나 않고

숨 가쁘게 꽃불 피워 올리던

벚나무만 담아왔습니다

 

아마도 오늘 밤

꽃, 몸살 나겠습니다

 

 

 

8. 슬픔이 빚어낸 빛깔 (모란)

                                      최경선

저토록 도도한 빛깔을 본적이 없다 했다

 

한때는

핏빛처럼 고운

그 꽃잎이 눈부셔

까닭 없이 

울었다 했다

 

애타게

향기로운 척 해보고

꿈꾸듯 별을 품어 토해내고

알 수 없는 허허로움에 목메던

시절이었노라고

 

빛바래고

바래다, 오지게

말라비틀어져 가는 그 모양이

당신 모습 같아 더 섧고도

서럽다 했다

 

하-다

하-다, 끝내는

열정(熱情)과 슬픔을 버무린 듯한

저 도도함이 

눈물겹지 않느냐며

 

옹이 박힌 등허리 성스럽게 웅크리며

그녀 고요히 똬리를 튼다

 

9. 무뎌졌다는 말

                                      최경선

 

무음으로 나직나직 파닥거리는 햇살

무심히 바라보다 아득해지는지

기운 몸이 자꾸만 한쪽으로 쏠립니다

불안정한 몸 바로 잡고

상처 난 풀꽃 만지작거리다 단단히 벼른 듯

오살헐,

아프면 아프다 말혀야지 말 안함 알아주간디

응어리진 속말을 합니다

 

행여 짐 될까 아파도 아프단 소리 못하고

통증대신 욕지거리 입에 달고 사는 끝순할매

자식 다섯을 안고 업고 치성으로 키웠다는데

빈말이라도 함께 살자는 아들 딸

한 놈도 없다는 현실이 목메는 일이라며

몸 아픈 것 보다 더 큰 상처가 되었는지

체념한 듯

이젠 다 무뎌졌다합니다

 

자석들 땜에 견디고 살았다는 시절 같은 할매

짐스런 어미는 더 못할 일이라며

앙 다물었던 이 풀고

먹고 잡흐면 먹고, 자고 잡흐면 자니

세상 섭하고 그리울 것도 외로븐 것도

다 별것 아니라며 손사래 칩니다

 

10. 탑

                                      최경선

 

천 년을 버텨온 탑 앞에 서서

그의 공력을 듣는 동안

그곳에 발돋움해 있는

돌이끼를 보았다

 

바람 한 점

햇살 한 줌

빗방울 한 모금

모아 모아서

온몸으로 끌어안고

 

얼마나 공들였으면

저토록 꽃무리를 이뤘을까

 

상처가 생기는 줄도 모르고

부스러져 내리는 것도 모르고

 

탑은

허물어지기 위해

스스로 이울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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