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석 시인의 詩 참깨밭에서 외 4편
임영석 시인의 약력
1961년 충남 금산 출생. 1985년 계간 『현대시조』 봄호 천료 등단.
시집으로 『나, 이제 삐딱하게 살기로 했다』외 7권,
시조집 『참맛』외 3권, 시조선집 『고양이 걸음』,
시론집 『미래를 개척하는 시인』이 있고, 제1회 시조세계문학상,
제15회 천상병귀천문학상 우수상 수상, 2019년 강원문학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외 강원문화재단 3회,
원주문화재단2회 창작기금 받음
참깨밭에서
누구는 참깨 꽃을 범종이라 말을 하고
누구는 참깨 꽃을 등꽃이라 말하지만
이 꽃은 고소한 맛을 낚아내는 미끼다
참으로 근사하고 황홀한 방법이다
참깨밭 참깨 꽃을 허공에 던져 놓고
참맛을 낚아내는 게 말이 나 되는 건가
범종처럼 매달아서 등꽃처럼 매달아서
허공에 던져 놓고 기다리는 저 배짱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낚시다
『정음시조』 2020년 제 2호에서
의자론
물에게 바닥이라는 의자가 없었다면
평등을 보여주는 수평선이 없었을 거다.
물들이 앉은 엉덩이 그래서 다 파랗다.
별빛에게 어둠이라는 의자가 없었다면
희망을 바라보는 마음이 없었을 거다.
별빛이 앉은 엉덩이 그래서 다 까맣다.
의자란 누가 앉든 그 의자를 닮아 간다.
풀밭에 앉고 가면 풀 향기가 스며들고
꽃밭에 앉았다 가면 꽃향기가 스며든다.
시조집 『꽃불』에서
초승달을 보며
괄호도 아니고 반 괄호로 달이 떠서
어떤 말의 의미들을 풀어줘야 할 것인데
앞 문장 깊은 여백에 품은 글이 사라졌다.
내 나이 다섯 살에 죽었다는 아버지는
콩깍지 속 콩들처럼 칠남매를 남겼지만
어머닌 육십 평생을 반 괄호로 살았다.
괄호()로 묶어내도 쭉정이가 많을 건 데
어떻게 칠남매를 혼자서 키웠는지
반 괄호 달빛을 보니 그 의문이 풀린다.
둥그런 달빛 속을 파고 든 저 그림자
제 몸을 다 내주고 그림자로 채운 마음
서로가 품고 품어서 반 괄호가 되어 있다.
불혹의 내 나이도 반 괄호가 되었지만
자식의 숨소리에 쫑긋 세운 내 두 귀는
언제나 초승달처럼 앞 괄호를 열어둔다.
박희정 엮음 『우리 시대 시인을 찾아서』에서
참맛
말속에 뼈가 있어도
그 뼈는 귀가 고르고
눈과 코가 못 먹으면
음식이라 할 수 없다
참맛은
뼈 있는 말을
가슴으로 먹는 거다
시조21 2019년 여름호에서.
고양이 걸음
고양이가 살금살금 숨 막히게 걷고 있다
날카로운 발톱 속에 본색(本色)을 감추고서
포획의 사정거리를 좁혀가는 저 고양이.
잡을까 놓칠까 내가 더 초조한데
고양이가 걸어갈 때 흐르는 무심지경(無心地鏡),
얼마나 참고 참는지 눈도 깜박 않는다.
저 집중의 눈화살이 내 갈 길을 가로막고
덤으로 담아주는 발밑의 민들레꽃
눈화살 천 번을 쏴도 빙그르르 웃고 있다.
『월간문학 』 , 2014년 4월호에서